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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황정숙 여사, 영인문학관서 추모전 개최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입대를 앞둔 인호는 용기를 내 '예쁜양' 정숙에게 뜨거운 연애편지를 보낸다. 

"자랑스레 공군에 입대하는 애국적 거사에 앞서 그동안에 제가 공연히 불안스런 봄닭처럼 괴롭힌 죄과에 대해 사과도 할 겸, 인사도 드릴 겸 한번 뵈었으면 하는 바 있습니다." 

학교에서 "아주 멋진 포즈"로 한번 보자고 부탁할 수도 있었지만 남녀간 별것 아닌 일에도 "수군대는" 남녀공학에서 사람들 앞에서 만나자고 부탁하면 정숙이 "쓸데없는 눈총"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소심한 선의" 때문에 편지를 보낸다고 설명도 달았다. 

3년 동안 군 복무를 마치면 정숙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 있을 거라며 "억울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해" 편지를 썼다며 입대 전에 만나달라고 끈질기게 졸라댄다. 

이후 인호는 학교에서 우연히 정숙을 본다. 아마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때였던 것 같다. 인호는 반가운 마음에 "비호같이" 그녀를 뒤따라갔지만 야속하게도 그녀는 무표정하게 말없이 고개만 숙여 인사하고선 친구들과 함께 가버린다. 

인호는 정숙에게 자신을 만나달라고 또 편지를 쓰고 "안 나오시면 그만 섭섭한 나머지 상사병에 걸려서 그만 OO 할지도 모르옵니다"라고 '귀여운 협박'을 한다. 


인호의 속을 무던히도 태운 '예쁜양' 정숙은 그의 끈질긴 구애에 인호가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하자마자 그와 결혼한다. 둘은 인호가 먼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43년을 해로했다. 

작년 9월 타계한 '영원한 청년작가' 고(故) 최인호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오는 25일로 꼭 1주기가 된다. 

선생의 부인 황정숙 여사는 남편의 1주를 맞아 특별한 추모전을 준비했다. 영인문학관, 여백 출판사와 함께 여는 추모전의 제목은 '최인호의 눈물'. 

오는 19일부터 11월 8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열리는 이번 추모전에서는 고인이 부인에게 보낸 연애편지 등 선생의 삶과 문학 세계를 보여주는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된다. 

항암치료를 받아 빠져 버린 손톱에 끼우고 글을 쓰던 고무 골무, 생애 마지막 날에 성모님께 기도하며 흘린 눈물 자국이 허옇게 번져 있는 책상, 마지막 작품인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쓰느라 촉이 비뚤어져 버린 만년필 등 마지막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고인이 남긴 유품들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어머니와 자녀들에게 보낸 편지, 손녀와 주고받은 편지, 생전 각별했던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에게 보낸 편지 등 육필 편지에서 만나는 동글동글한 그의 필체는 반갑다. 

"그리운 어머니 살아생전에는 한 번도 편지를 쓰지 아니하였던 제가 이제야 편지를 씁니다. (중략) 제가 이제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서 우표를 붙이지 아니하고 우체통에 넣지 않아도 어머니는 제 편지를 받으시리라는 것을 저는 알 수 있습니다."(2003년 '어머니가 가르쳐준 편지' 中)

'가족'이라는 글을 300회나 연재한 고인의 애틋했던 가족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가족사진과 자화상, '성난 얼굴로 돌아 보다'의 세트장 스케치 등 고인이 그린 그림도 볼 수 있다. 


데뷔작인 '견습환자'를 비롯해 출세작 '별들의 고향' '개미의 탑' '술꾼' '무서운 복수' '귀엣말하는 사람을 경계하라' '지구인' '길 없는 길' '상도' 등 육필 원고와 2년 먼저 세상을 뜬 박완서 선생이 생전 투병 중이던 후배 최인호에게 보낸 위로의 편지 등 문단과 연극, 영화 관련 자료들도 선보인다. 

고인은 네 권의 대형 스크랩북을 정리해 남겼으며 "이 스크랩은 남편 최인호에 대한 마누라 황정숙의 애정이다. 1974년 5.1" 등 스크랩북 곳곳에는 사랑스럽고 위트 넘치는 글이 적혀 �다.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은 앞서 고 김상옥 선생과 박완서 선생의 1주기전을 열 때도 상실감과 허탈감을 느꼈지만 "이번에는 더하다"면서 후배인 고인의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내내 마음이 너무 무겁고 착잡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령 전 장관의 부인인 강 관장은 "최인호 씨는 우리 부부와 띠동갑"이라면서 "그가 먼저 가서 내가 1주기전 준비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 나이가 너무 아까웠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최인호는 인간을 사랑한 따뜻한 사람이었다"면서 "그는 그렇게 인간을 사랑했고 인간에 대한 사랑을 거리낌 없이 감각적으로 표현했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이 전 장관은 1주기전 책자 앞면에 "인호가 세상을 떠났다. 나쁜 녀석. 영정 앞에 향불을 피우며 욕을 했다. 내 가슴에 그렇게 큰 구멍 하나 뚫어놓고 먼저 가버리다니(중략) 보고싶다 인호야"라며 고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추모전이 열리는 영인문학관에서는 행사 기간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30분 고인을 추억하는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또 10월 4일과 11일을 제외한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는 문학 강연이 열린다.

yunzh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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