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떠나는 이유 (20160525, 최민상)

2016년 06월 20일

※ 이 글은 페이스북의 디자이너 Julie Zhou의 “Why Designers Leave“를 번역한 글입니다.


디자이너가 그만두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그중 몇몇은 개인적이다. 삶은 가끔 우리를 전혀 다른 길로 인도하기도 하니까.

그중 몇몇은 야심에서 비롯된다. 마을 건너편에 지금 직업보다 조금 더 좋아 보이는 일이 있다. 더 많은 기회, 더 많이 배울 기회, 꿈꾸던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는 길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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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이유는 실용적이기도 하다. 인정하기에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배가 침몰하고 있다면 뛰어내려 수영을 해서 해안가에 닿긴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가끔, 이 세 가지 중 어떤 이유에도 해당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가끔은 잘 나가는 회사에서, 배울 기회도 많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은데도 떠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미친 짓 같지만, 흔하지 않은 일도 아니다.

자랑스러워 할 만한 작품

누군가 당신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다고 치자. 아름다운 그림, 걸작, 매우 중요한 빌딩의 로비에 걸릴 그런 그림말이다.

당신은 “좋네요” 라고 말한다. 당신은 이미 어느 수준에 이른 작가이고, 이건 꽤 흥분되는 프로젝트이다. 이어서 당신은 이 그림이 어떤 종류여야 할지 물어본다.

“물론 네가 잘하는, 평화로운 풍경이지.”

아아, 이렇게 감미로운 말이라니. 잠잠한 바다, 언덕, 나비가 살랑살랑 날아다니는 들판의 스냅샷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할 게 너무 많다. 다음날, 당신은 몇 가지 아이디어를 스케치해본다.

그때, 전화가 울린다. “좋은 소식이야! 그림 공개할 때 중요한 행사를 같이하기로 했어! 중요한 사람이 엄청 올 거야! 근데… 이 행사가 가능한 날이 오늘부터 한 달 뒤네… 그때까지 끝낼 수 있겠어?”

눈썹을 찌푸리고 고민해 본다. 30일은 촉박해, 너무 촉박하지. 보통은 3개월 정도 걸릴 텐데… 하지만 행사라니. 중요한 사람들도 오고… 에라, 그러겠다고 한다. 냉장고에 가서 레드불 한 팩을 꺼낸다. 긴 한 달이 될 것이다.

15일째 되는 날, 두 번째 전화가 온다. “끝내주는 소식이야! 그림이 너무 좋아서 더 잘 보이는 장소에 놓으려고 해. 리셉션 근처에 있는 로비 뒤쪽 장소 알지? 사람들이 오자마자 네 그림을 보게 될 거야! 끝내주지? 하지만 사소한 이슈가 하나 있는데… 새 벽에 그림을 걸려면 그림이 좀 더 작아야 한대. 지금보다 25% 정도 줄여야 해. 할 수 있겠어?”

당신은 이를 악물고 “즈금 스애 그름을 그를 스근은 읍는드요. 므금을 늦츠즈스든그…”라고 말한다(마감을 늦추지 않는 이상, 새 그림을 그릴 수는 없다고).

“아, 그럼 안 되는데! 행사는 이미 다 준비됐다고. 그림을 조금 잘라내면 안 돼?”

당신은 이미 반쯤 다 된 그림을 본다. 새로운 제약조건에 맞추려면 들판을 둘러싼 산을 없애야 한다. 기술적으로야 할 수 있긴 한데… 다른 그림이 될 것이다. 더 좋지 않은 그림.

당신은 하겠다고 한다. 약간의 고통을 느끼면서, 당신은 산을 걷어낸다.

25일째 되는 날. 세 번째 전화가 온다. “엄청난 소식이야! 지난번에 작업 진행 중인 거 보내주고 모두 너무 좋아해. 빌딩 오너한테도 보여줬는데, 너무너무 좋아하더라고. 실은 너한테 그림을 10장 더 주문하고 싶어해. 어마어마한 돈을 준대! 근데 아주 사소한 요구사항이 있는데… ‘카피바라’가 건물주의 영적인 동물인데 말이야, 지금 네 그림에 그 동물을 넣으면 너무너무 좋겠다네.”

당신은 당황한다. 아니 대체 카피바라가 뭔데?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당신은 구글 이미지 검색을 미친 듯이 실행한다.

“물론 한다고 하겠지! 그림을 확 살릴 거야. 카피바라 한 가족이 그림 안에 살아 숨 쉬는 걸 상상해봐.”

결과가 뜨고, 당신 속은 뒤집어져 버렸다.

어떤 미친놈이 카피바라따위를 영적인 동물이라고 하는거야? 일단 누가 봐도 이상하게 생겼잖아! 얘네들이 해질녘 들판에 왜 나와있냐고! 이게 뭔 미친 소리야!
어떤 미친놈이 카피바라 따위를 영적인 동물이라고 하는 거야? 일단 누가 봐도 이상하게 생겼잖아! 얘네들이 해 질 녘 들판에 왜 나와 있냐고! 이게 뭔 미친 소리야!

당신은 이 새 요구사항에 대해 맹렬히 반박했다. 하지만 전화기 건너편의 중요한 사람들은 설득을 잘한다. 이게 그들이 원하는 거고, 카피바라가 최근 예술세계에서 새로운 핫 아이템이라 모두 좋아할 거라고 했다. 중요한 빌딩에 중요한 그림을 완성하는 영예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한다. 원하지 않으면 다른 아티스트를 찾아보겠다고까지.

결국, 당신이 “아니요.”를 말할 상황이 아니었다. 당신은 손을 떨며 그 고요한 캔버스 위에 뚱뚱보 기니피그를 그리기 시작한다.

30일이 지나고, 그림은 완성되었다. 입구 근처에 아주 좋은 장소에 걸렸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다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공개 행사는 영적으로 충만하고, 생동감 있었다. 중요한 사람들은 샴페인을 손에 들고 당신과 당신 작품에 건배를 한다. 그날 밤에 보이스메일에는 의뢰 요청이 넘쳐나게 되었다. 바깥에서의 잣대로는, 당신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진실을 알고 있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당신은 진실을 안다. 매 순간 결정이 당시에는 논리적이었다고 해도 상관없다. 당신이 <카피바라 선셋>을 바라볼 때마다 컨셉은 너무 성급했고, 구도는 어긋났으며, 주제는 말도 안 된다는 걸 느끼게 될 테니까.

이 작품은 당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작품은 당신이 자랑스러워 할 만한 것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

크리에이티브 영역에서 일하는 누구나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포부가 있다. 그들의 취향이 극대화된, 이상적인 상태를 추구하기 마련이다.

만약 환경이 그들의 내적 나침반을 따라가는 일을 계속 막게 된다면 결국 그들은 떠나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 환경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주의하시라.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이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시라.

그러고 나면, 디자이너가 왜 떠나는지 물어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원문: nothing speic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