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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종다리의 노래

이온디
2009년 01월 07일

우연히 싸이 글을 읽다 '손석희 교수님의 매력을 아시나요'라는 글을 보고 '풀종다리의 노래'라는 낯설은 제목의 책을 써낸 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낼름 가서 빌려왔다. 학교에서 놀고 있으면 학교 자원을 맘대로 쓸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 중도 지하에서 컴퓨터를 하다가 중도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 책을 뽑아와서 고구마우유와 함께 자리에 되돌아왔다.

저번에 빌린 '의대 가고 싶지'라는 책을 뒤늦게 반납해서 대출할 수 있을까 망설였는데 다행히도 빌릴 수 있었다.
빌리기는 빌렸는데 막상 언제 읽지 싶다. 바로 읽으려고 빌려왔건만 또 이런다.

MBC 아나운서 손석희씨의 에세이. 무심히 지나치면 `또 한 명의 방송인이 책을 냈구나` 싶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한국방송의 문제의 현실을 `고발`하는 만만찮은 무게의 비평적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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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년 03 월 04 일 (14:06)
    진실은 때로 어줍잖은 말에 의해 변질될 수도 있으니까.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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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년 03 월 04 일 (14:09)
    햇빛과도 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 밝음으로, 또한 감내할 수 있는 우울함으로... 그것이 나의 어릴 적 소망이었다. 중간쯤에 와 되돌아본 나의 삶이 내가 소망했던 것과는 이만치나 동떨어져 있는 것이라 해도 나는 내 바람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이제 겨우 세상에 눈을 뜬 내게 한 번쯤의 '관대함'은 가능하지 않을까. 삶이란 것이 늘 밝은 것도, 견뎌낼 만큼의 고통만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라면, 나는 내 절반의 삶을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관대함'이 훗날에도 또 가능하리라 믿는 것은 아니다. 늦깎이 삶에 대한 치열함으로, 나는 어릴 적 햇빛에 대한 기억에서 얻은 소망을 지켜야만 할 것 같다. - 햇빛에 대한 기억, p.14-15
    Kevin Kern - Le Jardin 을 들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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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년 03 월 04 일 (14:13)
    매일 오가던 그 길을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도 오랫동안 못 잊어 했다. 안암동에서, 보문로의 큰 길을 따라 돌지 않고 성신여대 앞을 지나 미아리고개의 허리께까지 내지른 뒷길을 유유히 걸어간 다음, 고개 마루를 넘어 다시 한동안을 내달으면 학교였다. 잰 걸음으로 가면 삼십여 분, 천천히 가면 오십여 분이 걸리는 그 길은 저금통 속에 쌓여가던 돈이 주는 즐거움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주는 것이었다. 특히나 미아리고개에 닿기 전까지의 뒷길은 넓직하긴 했지만 그 때만 해도 포장이 안된 흙길로 차들도 잘 안 다니는 호젓한 길이었다. 길가 양쪽으로 줄지어 붙어선 낮은 한옥들, 저쪽 잘 보이지 않는 길 끝까지 가로수로 심어진 포플러나무들과 그 사이사이로 심심찮게 끼어들어 도로 한가운데로 줄기를 늘어뜨린 버드나무들, 그리고 언덕 이ㅜ로 보이는 오래된 성당. 그 길은 그랬다. 밤에 집으로 돌아올 때면 길 중간쯤에 있는 커다란 버드나무가 마치 산발을 하고 서 있는 여인처럼 보여 그 밑을 지날 때마다 가슴을 조이곤 했던 기억도 새로운 것이다. 밤에 보는 나무가 무섭다는 걸 안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으리라. 길 양쪽 끝에 있던 혼잡하게 뒤엉켜 돌아가던 세상과는 동떨어진 채로, 그 길은 늘 과거 속의 길처럼 누워 있었다. 그것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에 떠나온, 그러나 이미 기억 속에 남아 있지는 않은 세상의 모습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마치 현세를 떠나 또 다른 세계로, 그리고 다시 내 목덜미를 잡으려 도사리고 있는 현실의 세계로, 이렇게 들락거리듯 내 통학길은 이어졌다.

    차츰 손석희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그 감상에 나도 빠져드는 것 같다. 그가 쓴 붓필 한 끝마다 그 때의 그가 본 감상들이 내 속으로 들어와 나도 그 길을 걷고 그 장면을 바라보는 것만 같다. - 길에서 얻는 것들, p.18을 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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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년 03 월 04 일 (15:04)
    아. 세상은 변했는데 내 기억만 고집스런 것이구나. 나는 아내와 아들에게 내가 다니던 시절의 길의 모습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흙먼지와, 찌개냄새가 흘러나오던 한옥들과 여름밤 버드나무 밑의 공포에 대해서... 그리고 눈 내리는 날 잠기듯 적막했던 그 길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그러나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제 아빠가 겨우 철들 무렵, 그 길을 오가며 떠올렸던 그 많은 상념들과 이제 남은 추억들을 내 아들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길에서 얻은 것들 p.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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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년 03 월 04 일 (15:08)
    나의 사회사적 기억여행 p.21-30
    꽤나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나의 사회사적 기억여행'은 4.19과 5.16이라든가 12.12, 삼청교육대 연행임무 등 그가 젊었던 그 시절 그로 하여금 행해졌던 그 일들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책 표지의 뒷편에 가족과의 찍은 사진에서 보여지는 그의 카랑한 말소리가 단지 말소리 뿐만이 아니었다는 느낌을 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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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년 03 월 04 일 (15:35)
    그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지난 뒤 어느날, 내가 아버지의 매에 대한 기억을 거의 잊었을 즈음, 아버지는 당신 앞에 나를 불러 앉히시더니 내게 법(法)을 한자로 써보라 하셨다. 물 수(水) 변에 갈 거(去), 물이 흐르는 이치대로 양심이 편한 쪽으로 행동하면 그것이 곧 법과 같다는 말씀이었다.
    아버지의 법, 아버지의 작은 역사,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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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년 03 월 04 일 (15:40)
    나의 아버지는 팔십육년에 환삽도 채 맞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서른을 넘긴 나이이ㅡ 나는 당신의 병석 앞에서 병환이ㅡ 고통이 애절하여 울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이제까지의 그 고단하셨을 삶을 생각하며 울었다.

    내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특히, 나는 나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언젠가는 내 아이들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바래 버린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며 제 아버지의 역사를 생각할 것이다.

    아버지의 법, 아버지의 작은 역사,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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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년 03 월 04 일 (15:44)
    남의 사정을 분석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 입이 가끔씩 '걸진' 것이, 혹 방송에서 너무 정제된 말만 쓰려다가 생긴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냐고도 하지만 그건 아니다. 나는 훨씬 전부터 그랬으니까.

    걸지다.
    [형용사][북한어] 목소리가 몹시 갈린 듯하면서도 우렁우렁 힘차다.

    카랑하다.
    목소리가 쇳소리처럼 맑고 높다.

    나는 그의 목소리가 카랑하다고 표현했는데, 손은 그의 걸진 목소리라 하였다. '걸지다' 라는 것의 뜻을 몰랐기에 찾아보았더니 카랑하다는 말과 비슷하지 않나? 그런데 문맥을 읽어보면, '아마 그것이 원인이라면 특히나 아나운서실 사람들은 하루종일 상스러운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아야 할 것이다.' 라고 하였는데, 이 '걸지다' 라는 표현은 말이 거칠다라고 뜻과 비슷한 것일까?

    이후의 글에서 그는 '바른 말 고운 말' 에 앞장서도 시원치 않을 내가 엉뚱하게도 상소리 예찬론을 펴댔으니, 자신에 대한 변명이 지나쳤다고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은 없겠다. 그러나 나는 깨끗하고 정중한 언변으로 무장된 사람을 믿지 않는다. 그는 상대하기에 편안한 사람일 수는 있으나 함께 지낼 수 있을 만큼 '인간적'이진 않다. 라고 하고 있으니 이 걸지다 라는 표현은 목소리에 대해서가 아니라 말투에 대해서 하는 표현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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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년 03 월 04 일 (20:37)
    이런 내게 아내는 요즘 한 가지 명언을 남겨 놓았다.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필요할 때 잇어 주지 않으면 그 사이 아이는 혼자서 자라버리고 마음의 상처도 함께 커간다는 것이다. 아내의 그 말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곧 친구 같은 아빠가 되어 줄 것이다' 라는 나의 다짐을 송두리째 무용지물로 만들어 놓는다. 그녀의 말은 철저히 맞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벌써 나는 나로부터 한 발짝쯤 멀어진 듯한 아이에 대해 불안해 하고 있는데.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p.8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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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년 03 월 04 일 (20:42)
    문제는 그런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과보호 심리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이의 삶에 대한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로 하여금 그만의 세상과 홀로 부딪힐 수 없게 한다면 '행동하고 시도하고 모색하고 숙달하는' 자기 완성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하여 아이가 살아갈 커다란 세상을 내가 지극히 좁은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수잔 포워드는 이렇게 말한다.
    "어린아이가 길에서 서성거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통제가 아니다. 그것은 현명한 것이다. 그러나 십년이 지나서 혼자 힘으로 얼마든지 길을 건널 수 있는데도 계속 통제를 한다면 그것은 과도한 통제다. 근심과 두려움에 찬 부모에게 과도하게 통제받은 아이는 자라나서도 근심과 두려움을 품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p.85

    나의 어머니는 아직까지 자식에 대한 사랑이 도로가에 내놓은 아이마냥 애지중지 하신다. 이제는 차를 타고 나갈 수도 있고 큰 배를 타고 떠날 때도 되었는데 아직 제 품의 자식마냥 오냐 오냐 그래그래 하신다. 그런 말들이 아직 나를 대범한 사람으로 만들지 못하게 만든다.

    이런 내게 수잔 포워드는 도저히 꾸물거릴 수 없도록, 채찍과도 같이 가혹한 한마디를 던진다.
    "무자격 부모는, 한 대가 고장나면 줄줄이 밀려서는 고속도로의 차량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대대손손 해악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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