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home.inpia.net/poohpig/menu2.html눈물에 얼굴을 묻는다... -원태연
1
너의 목소리, 눈빛, 나를 만져주던 손길, 머릿결
부르던 순간부터 각인되어버린 이름, 아름다운 얼굴
그렇게 시작되었던 어쩌면 재앙과도 같았던 사랑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사랑에 중독되어갔다.
언젠가 니가 조금만 더 천천히 울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그때
천천히 턱끝으로 모여든 너의 눈물에
손끝조차 가져가볼 수 없었던 그때
단 한번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이유로
살점을 떼어내듯 서로를 서로에게서 떼어내었던 그때
나는 사람들이 싫었고
사람들의 생각이 싫었고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사랑도 결국에는 사람이 하는 일인가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그렇게 서로를 버렸음에도
단 한번뿐인 사랑을 지켜내지 못했다.
2
마지막을 알고 만나야했던 그 날
서로의 얼굴을 목소리를 상처를 다시 한번 각인시켰던 그 날
너를 보내며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었던 기도를
하얀 눈이 까맣게 덮어버렸던 그 날
이제부터 나는 무엇을 참아내야 하는가
이런 모습으로 이런 성격으로 이런 환경으로 태어나
그렇지가 않은 너를 만난 죄
그렇지가 않은 니가 나를 사랑하게 만든 죄
그렇다면 이 모든 나의 죄를 사할 수 있는 방법은
이렇게도 살아있음에 미련이 없음이
나를 더욱더 가볍게 만들어 준다.
무엇인가 의미를 남겨두고 싶어 올려다본 하늘에
눈물에 얼굴을 묻던 너의 모습이 아련하게 스쳐간다.
내가 태어나던 나의 하늘은 어떤 색깔이었을까
"함께 있으면 좋을 사람"
그대의 눈빛 익히며
만남이 익숙해져
이제는 서로가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쓸쓸하고, 외롭고, 차가운
이 거리에서
나, 그대만 있으면
언제나 외롭지 않습니다.
그대와 함께 있으면
내 마음에 젖어드는
그대의 향기가 향기로와
내 마음이 따뜻합니다.
그대 내 가슴에만
안겨줄 것을 믿고
나도 그대 가슴에만
머물고 싶습니다.
그대는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
우리 한가롭게 만나
평화롭게 있으면
모든 시름과 걱정이 사라집니다.
우리 사랑의 배를 탔으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습니다.
그대는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입니다.
"몽산포 일기(夢山浦 日記)" -이정하
Ⅰ
그대와 함께 걷는 길이
꿈이 아닌 곳 어디 있으랴만
해질 무렵 몽산포 솔숲길은
아무래도 지상의 길이 아닌 듯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참으로 아득한 꿈길 같았습니다.
어딘가로 가기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함께 걸을 수 있는 것이 좋았던 나는
순간순간 말을 걸려다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 속마음
서로가 모르지 않기에.
그래, 아무 말 말자. 약속도 확신도 줄 수 없는
거품뿐인 말로 공허한 웃음짓지 말자.
솔숲 길을 지나 해변으로 나가는 동안
석양은 지기 시작했고, 그 아름다운 낙조를 보며
그대는 살며시 내게 어깨를 기대 왔지요.
함께 저 아름다운 노을의 세계로 갈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으로 내가 그대의 손을 잡았을 때
그대는 그저 쓸쓸한 웃음만 보여 줬지요.
아름답다는 것,
그것이 이토록 내 가슴을 저미게 할 줄이야.
몽산포, 해지는 바다를 보며
나는 그대로 한 점 섬이고 싶었습니다.
그대에겐 아무 말 못했지만
사랑한다, 사랑한다며 그대 가슴에 저무는
한 점 섬이고 싶었습니다.
Ⅱ
걷다 보니 어느덧 돌아갈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여전히 바다는 우리 발 밑에서 철렁이고 있었는데
우리는 이제 제 갈 길로 가야 합니다.
또 얼마나 있어야 이렇게 그대와 마주할 수 있을지,
이런 날이 우리 생애에 또 있기나 할는지,
둘이서 함께한 이 행복한 순간들을
나는 공연한 걱정으로 다 보내고 말았고,
몽산포, 그 꿈결 같은 길을 걸으며
나는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내 발 밑에서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처럼
그대 또한 내 삶의 한가운데
밀려왔다 기어이 밀려가리라는 것을.
그대와의 동행이 얼마간은 따뜻하겠지만
더 큰 쓸쓸함으로 내 가슴에 남으리라는 걸.
몽산포, 그 솔숲 길 백사장은 그대로 있겠지만
그대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으리라는 걸.
몽산포, 그 꿈결 같은 길,
아아 다시 돌아와야 하는 길을 간다는 건
못내 쓸쓸한 일이라는 걸.
"먼 후일" -김소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대로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편지" -윤동주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자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잠 못 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사랑한다는 것으로" -서정윤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너의 곁에두려 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바람맞는 길목" -문향란
나의 사랑은 너의 심장을 겨냥했지만
빗나가고 말았다.
나의 육신을 짓누르는 좌절감과
밀려오는 고독한 파도의 아우성이 잠을 깨우고
마음을 찢는 묘한 소리가 있어
허공에 대고 고함을 질러보지만
모두가 비웃을 뿐이다.
과감히 돌려줄 수는 없는 걸까?
한번 가버린 사랑을 주워서
다시 쏠 수는 정녕 없는 걸까?
이로써 슬픔을 지니고
초라한 걸음으로 방황하겠지
나에게 들려줄 말 한마디도 없다던
너에게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주고
나 이제 빈 손이 되련다.
쓴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모든 것은 끝났다'고.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나는 스물 한 살이었습니다" -원태연
우연히 들려온 노래. 그 노래
나는 스물 한 살이었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들고있던 신문과
주머니 속에 있던 것이 전부였던
나는 스물 한 살이었습니다.
하나의 우산 속에 부딪히는 어깨에
작은 빗방울마저도 아름답게 보였던
나는 스물 한 살이었습니다.
이렇게 멈춰 서서
그 노래를 들으며 그때를 떠올린다는 것이
이런 것인지 미리 알았더라도 그냥 빠져 있었을 나는
스물 한 살이었습니다.
"내가 있을게" -지예
웃어 본 적 없는 그런 눈으로
그 어떤 아픔에 힘겨웠는지
널 안아 주고 싶어
울고 싶어지면 눈물을 보여
그러다 지치면
힘들게 했던 그걸 용서해
너를 느낄 때마다
나를 보는 것 같았어
아직 남아 있는 아름다움을 찾지 못하는
날 만나기 위해
외롭던 널 지켜 줄 꺼야
여린 너의 마음 다치게 했던
그 시간만큼 널 지켜줄게
작은 너의 몸짓 하나까지도
늘 처음처럼 바라볼게
이별 없는 그 곳에
내가 있을게
"난 행복합니다..."
지금 내 자리가 양지바른 곳이 아니여도 좋습니다.
지금 내 자리에 음지가 자리하고 있어도 좋습니다.
사랑하는 당신의 향기가 내 곁에 머물고 있는한.
지금 내 자리에 어떤 슬픔이 서려있어도 좋습니다.
지금 내 자리에 어떤 아려지는 아픔이 젖어들어와도 좋습니다.
당신이 남기고 간 자리자리마다 내 눈물로 향을 뿜어낼 수 있으므로
난 지금 내 자리가 행복합니다.
당신의 내음이 젖어드는 그리움에 빠져들게 해도,
그래서 아파지는 마음이 다가와도,
그리워할 수 있는 당신이 있기에 난 행복합니다.
나,
이밤 눈물로 지새워 내리쬐는 햇살을 볼 수 없다해도,
지치도록 그리워 밤새울 수 있다는 것으로도
난 행복합니다.
지금,
당신의 향이 내 몸속으로 타 들어가고 있습니다.
"골동품" -원태연
오래된 책상 위에 깨끗한 재떨이가 있고
적당한 밝기의 스탠드가 있다.
적당한 밝기의 불빛을 받은 라디오에서는
오래도록 들어왔던 노래가 흐르고
조금 전 닦아둔 액자 안에는
여전히 행복한 연인이 있다.
'당신은 여전히 이렇게 아름다우신가요'
깨끗한 재떨이에
액자를 닦아낸 휴지가 올려지고
오래된 책상 위에는
방금 흐른 눈물이
툭
떨어진다.
"해바라기" -원태연
사들지 않는 해바라기가 있다. 방안 한쪽 구석에서
말을 걸어볼 엄두조차 나지 않을 만큼 조용하게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다.
웃지도 울지도 않지만 욕하지도 소리 지르지도 않는다.
헤어짐이 싫고 쓰라린 것이 싫다.
내가 아무리 시들어 버려도 늘 같은 곳에서
나를 지켜봐 주는 나의 해바라기가 있다.
'보고 싶다. 다시 헤어지고 다시 쓰라려도......'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
슬픔은 행복했던 것만큼 그대로 다시 돌아오는 것일까
"밤새 내린 비" -이정하
간밤에 비가 내렸나 봅니다.
내 온몸이 폭삭 젖은 걸 보니
그대여, 멀리서 으르렁대는 구름이 되지 말고
가까이서 나를 적시는 비가 되십시오.
"자살" -류시화
눈을 깜박이는 것마저
숨을 쉬는 것마저 힘들 때가 있었다.
때로 저무는 시간을 바라보고 앉아
자살을 꿈꾸곤 했다.
한때는 내가 나를 버리는 것이
내가 남을 버리는 것보다
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무가 흙 위에 쓰러지듯
그렇게 쓰러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당신 앞에
한 그루 나무처럼 서 있다.
"비 비린내" -원태연
비가 온다. 그래서인지 차가 많이 막힌다.
'비 비린내가 옛 기억을 건드리는 오후에......'
라고 말하며 라디오 진행자는 떠난다.
그리고 난 비 비린내를 맡으면 창문을 연다.
충분히 슬플 일이라고 생각해서 울어버렸다.
'그리운 사람. 참 많이 그리워지는 사람'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
그때까지만 기억하고 싶다.
그대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때
"그는 떠났습니다" -이정하
떠남이 있어야 돌아옴도 있는 거라며 그는
마지막 가는 길가지 내게 웃음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왜 모르겠습니까,
그 웃음뒤에 머금은 눈물을.
그의 무거운 발자국 소리를 가슴에 담으며
나는 다만 고개를 숙일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뛰어가서 막아서고 싶었지만
도저히 난 그럴 수 없었습니다.
먼 훗날을 위해 떠난다는 그를
어떻게 잡을 수 있겠습니까.
입술만 깨물 수 밖에.
내가 고개를 숙이는 동안
그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그래서야 내 몸은 슬픔의 무게로
천 길 만 길 가라앉습니다.
그는 떠났고 나는 남아 있습니다만
실상 남아있는건 내 몸뚱아리 뿐입니다.
내 영혼은 이미 그를 따라나서고 있었습니다.
"소금인형" -류시화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네
"나무" -원태연
왜 하필 나는
당신 가슴 속에서
태어났을가요
넓은 곳에서
자유로운 곳에서
아름다운 곳에서 태어나지 못하고
여기서만 이렇게
자라나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