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쌀이나 먹거리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한끼 때우는 정도에 감사하며 사는 스타일이었다. 쌀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년 전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주최한 맛칼럼니스트 박상현씨의 강의 "한국인과 밥상, 밥맛을 찾아드립니다"를 듣고 나서부터였다.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아내를 위해 강의를 신청했다.
그 때 처음으로 쌀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정말 맛없는 밥을 먹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본인과 한국인의 밥에 대한 태도의 차이를 듣고 나서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박상현씨의 책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를 읽고 나서 직접 규슈를 가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실제 규슈 여행도 다녀왔다.
이후 술자리가 생기면 동네사람들, 친구들에게 쌀에 대한 이야기, 밥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꺼내곤 했다. 그리고 "우리도 멋있는 동네정미소를 한번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던져보았다. 누구는 좋다고 하고, 누구는 가능하겠냐, 누구는 상상이 잘 안 간다고 답했다. 그래도 나의 수다는 2년 정도 더 이어졌다.
올해 초 문득, 내 삶의 변화을 위해 내가 사는 마을의 변화를 위해 더 늦기 전에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자라났다. 동네정미소가 아니라 '쌀카페'를 한번 같이 만들어보자고 동네사람들에게 떠들기 시작했다.
근처 아파트에 사는 주부, 마을 활동하는 청년, 서울의 도시농부, 전통장 만드는 마을기업하는 친구, 마을카페를 운영하는 매니저, 기획사를 운영하는 후배 등과 함께 첫 번째 준비모임을 했다. 그리고 사회혁신재단을 준비하는 (가칭) 재단 '해봄'의 지원도 받아, 무모한 도전의 시작으로 도쿄 쌀가게 탐방을 다녀왔다.
우리는 핵심적으로 참고하려고 한 곳은 '아코메야 도쿄 (アコメヤ トウキョウ, AKOMEYA TOKYO)였다. 한마디로 쌀 백화점 곳이다. 쌀을 품종별 지역별로 도정해주기도 하고, 김이나 장아치 등 밥과 관련된 부식품, 주걱이나 수저 같은 식기류, 쌀로 만든 음료와 술로 판매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는 제철반찬들이 제공되는 아담한 식당도 있었다. 2층에는 도자기로 만든 밥솥 밥그릇, 먹거리에 관련된 책 전시판매. 후식으로 먹을 수 있는 과자나, 커피까지 판매하고 있었다.
'아코메야'는 탐나는 쌀가게였고, 문화적 공간이었고, 커뮤니티였다. 도쿄의 전통시장, 상점가도 방문했다. 장외시장에서 만난 주먹밥과 즉석 계란말이는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상점가의 쌀가게도 갓 도정한 쌀을 판매하고, 즉석에서 만든 주먹밥을 먹을 수 있었다. 쌀을 귀하게 생각하는 일본인들의 철학을 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디테일에 재미가 숨어 있었고, 맛과 재미를 즐길 줄 아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도쿄 탐방 이후 대선이 끝나고, 우리동네 쌀카페 2번째 준비 모임을 했다. 도쿄탐방 보고서를 공유했고, 쌀카페 추진계획을 토론했다. 다음 3번째 모임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출자방식 및 운영, 주요사업, 주요상품에 대한 토론을 진행할 예정이다. 우리동네 쌀카페는 만드는 과정부터 주민들이, 지역상인들이, 동네청년들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준비하려고 한다. 나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동체경제에 대한 작은 실험, 무모한 도전으로서 쌀카페가 설레고 떨린다. 우리의 꿈은 서울시 25개구로 시작하여 전국 모든 곳에 우리동네 쌀카페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갓 도정한 쌀로 밥맛 나는 동네를 만들고 싶다. 쌀카페를 통해 우리의 삶이 좀 더 행복해지기를 희망한다. 3차 준비모임에서는 갓 도정한 쌀과 오래된 쌀 비교체험을 할 예정이다. 쌀카페와 계약할 논에 모내기도 가고, 2차 도쿄 쌀카페 탐방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