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최고의 천재는?
2007.11.11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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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월드와이드웹(www)을 창시해 인터넷 시대를 연 컴퓨터 과학자 버너스 리와 환각제 LSD를 발견한 스위스 화학자 알버트 호프만이 ‘살아있는 천재 100인’ 중 공동 1위에 뽑혔다.

1955 년 태어난 불세출의 두 인물이 있다. 한 사람은 전세계인이 사용하는 컴퓨터 운영시스템을 만들어 지구촌 최고의 갑부가 됐고, 다른 한 사람은 전세계를 연결할 인터넷망을 무료로 공개하고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윌리엄 H 게이츠 3세와 티모시 버너스 리. 우리가 빌 게이츠로 잘 알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과 영국 태생 컴퓨터 과학자가 동갑내기 주인공이다.

1999년 11월 미 경제주간지 포브스는 ‘두 사람 중 누가 더 기술의 발전에 기여하고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었는가’를 물었다. 포브스가 꼽은 사람은 게이츠가 아니라 버너스 리였다.

세 계적인 컨설팅 회사인 크리에이터즈 시네틱스(Creators Synectics)가 연구조사한 ‘살아있는 천재 100인’ 중 공동 1위를 차지한 인물도 버너스 리(게이츠는 43위)다. 이번 조사는 영국인 4000명에게 10명씩을 추천받았으며, 시대의 패러다임을 얼마나 바꿨는지, 대중적인 인지도·지적인 능력·업적과 문화적 영향력 등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두루 감안해 선정했다.

텔레그래프는 공동 1위에 오른 알버트 호프만과 버너스 리를 가리켜 “우리가 살던 세계를 완전히 뒤흔들었다는 점에서 1위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고 보도했다.

살아있는 최고의 천재로 뽑힌 두 사람은 어떤 인물일까.
‘웹의 대부(代父)’ 혹은 ‘웹의 아버지’로 불리는 버너스 리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철저히 피한다. 사생활도 공개하지 않는다. 아내가 미국인 컴퓨터 프로그래머이고 두 아이가 있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의 업적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겸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라는 말에 동의를 끌어내는 것이 ‘투쟁’에 가깝다고 텔레그래프가 평했을 정도다.

버 너스 리의 부모는 유명한 수학자였다. 어릴 적 그는 아침 식탁에서‘-4의 제곱근이 무엇인지’를 골똘히 생각하고, 골판지 상자로 컴퓨터를 만드는 놀이를 하며 즐거워했다. 물리학 전공으로 옥스포드대를 졸업한 그를 두고 지인들은 “부드럽고 말 걸기 쉬우면서도 일에 있어서는 끈질긴 사람”이라고 평한다.

1989년 월드와이드웹을 창시할 무렵, 그는 스위스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 에서 계약직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 인터넷은 세상에 나온 지 이미 20년 정도가 지났으나, 극소수의 학자들과 군사 컴퓨터 전문가들만이 사용하고 있었다. 버너스 리는 “세상의 모든 컴퓨터가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이를 위한 컴퓨터들간의 언어가 바로 HTML이다. 처음 인터넷이 태어나는 데는 미 정부의 돈 수백만 달러와 수십 명의 과학자, 2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버너스 리는 단 두 달만에 인터넷에게 ‘인간의 얼굴’을 만들어주면서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가 만들어낸 WWW 덕분에 웹사이트가 생겨나고 모두가 각자의 주소를 갖게 됐다.

버너스 리는 자신의 창조물인 월드와이드웹을 로열티도, 특허도, 어떠한 제한도 없이 완전히 무료로 세상에 내놓았다는 점에서 특히 찬사를 받는다. 현재 MIT에서 일하는 그는 2004년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버 너스 리와 공동으로 1위에 오른 화학자 알버트 호프만(101)은 지난해 100세를 맞았다. 남다른 장수 비결에 대해 “몰래 숨겨두고 복용하는 환각제 LSD 효과 아니냐”는 억측이 떠돌기도 했다. 그러나 호프만은 “날계란과 뮤즐리(콘플레이크와 비슷한 영양식) 덕분”이라고 말했다. 70년 동안 함께 살아온 아내 아니타와 함께 스위스에서 살고 있는 호프만은 손자 8명, 증손자 6명을 두고 있다.

1906년 스위스 바덴에서 태어난 그는 1929년부터 스위스 제약회사 산도스(현 노바티스) 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순환호흡기 자극제를 연구하던 중 우연히 LSD를 발명한 것은 1938년. 당시 동물 실험에서는 안절부절못하는 증상을 빼고는 특별한 효험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5년 후,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던 그는 갑작스런 환각 증세를 겪게 된다. 실험 도중 자신도 모르게 흡입한 LSD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LSD ‘첫 경험’에 대해 “세상이 갑자기 일그러져 보이기 시작했다. 이웃집 여성이 마녀로 보였다. 다른 세상, 다른 시대로 이동한 것 같았다. 날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은 환희와 공포를 동시에 겪었다”고 고백했다. 호프만이 ‘말썽 많은 자식(problem child)’이라고 부르기도 한 LSD는 1960년대 히피 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비틀스와 지미 헨드릭스가 만들어낸 음악의 자양분이 됐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도 예언자나 성인(聖人)처럼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알려져 무분별하게 남용되다 1960년대 중반 이후로 전면 금지됐다.


[신정선 기자 viole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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