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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하는 날

이온디
2008년 11월 25일
소풍 하는 날
 
우리 한 생을 살면서 서로가 맑은 즐거움을 모르고 살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워낙에 사랑받지 못해서 그리고 사랑할 줄 몰라서 아마 그랬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그대가 나의 누이이거나 혹은 내가 다시 그대의 오라비가 될 때
그 때 우리 함께 소담한 도시락을 들고 소풍합시다.
우리는 아직 소풍을 함께 할 나날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풍하는 날,
가만히 옷장을 보면서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는 대신
우리가 소풍을 가도 되는가 하는 고민 따위는 안 하기로 합니다.
 
매발톱꽃이 피는 그 천변에서 우리는 다시 돌아올 것이므로 그러할 것이므로,
그날 우리가 가지고 간 도시락을 다 먹지 못하고 그냥 다시 되돌아온다 하여도
 
그대가 나의 누이로써 내가 그대의 오라비로 이 지상에 다시 살 수 없다 할지라도
다시 오늘이 오기를 서약할 수 없다 해도 그 날 우리는 소풍 합시다.
 
오랜 뒤에 내가 다시 그대를 찾을 때
그대는 그 자리에 고요히 머물러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가고 난 그 천변이 우리의 흔적 대신 햇볕 한 자락 아늑하게 드는 날이 왔을 때
우리는 함께 소풍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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