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 히어로〉를 보며 나의 장례식을 상상함
〈MBC 스페셜〉 ‘무릎팍 도사’ 재탕 될까 걱정
신광호 <명랑 히어로>는 개인적으로 무지 좋아하는 프로다. 예능프로는 연예인들끼리 모여서 질펀하게 놀다 가는 경우가 많지 않나. 데굴데굴 구를 만큼 큰 웃음 주는 것도 아니고. 그 속에서 <명랑 히어로>가 시사 문제를 다룰 땐 꼭 ‘리틀 백분토론’을 보는 느낌이었다. 잠옷 입고 볼 수 있는 세상 이야기랄까. 전문가가 아니라 친숙한 연예인들이 자기 개성을 갖고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좋았다. 그랬던 프로가 갑자기 ‘장례식 시리즈’를 하고 있다.
정석희 처음 <명랑 히어로>의 등장은 획기적이었지. 김구라랑 박미선 입장이 다르고 이하늘은 또 엉뚱하고. 서로 다른 생각이 느껴지니까 그게 신선했던 거다. 막상 예능에선 비난하고 독한 말 퍼붓는다 해도 끝에서는 다 흐지부지 화해하잖아. 그런데 <명랑 히어로>는 현실적인 주제를 놓고 ‘너 이건 틀렸어’를 말하니까 속~시원했지. 똑같은 물에서 노는 같은 ‘라인’ 연예인들만 모은 게 아니라 다른 물에서 헤매는 패널들이 모였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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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처음에 비해서 출연자들의 색깔이 모호해졌다. 이경규가 투입된 시점부터 달라졌는데. 은근슬쩍 게스트로
들어가서 하루만 묵겠다 했던 그가 이젠 중앙에 앉아서 진두지휘를 한다. 이경규의 왕 노릇! 왕같이 웃기면 또 모르겠는데, 웃기는
후배들을 보고 본인만 웃고 가시는 건 쫌.(웃음)
정 각자 포지션을 못 지키고 있다. 가상 장례식이란 소재가 문제가 아니라 각자 개성과 의견을 잃은 게 아쉽다.
신 시사 문제를 다룰 때 매력은 패널들의 솔직함이었지. ‘나, 무식한 거 보이지 말아야지’ 했던 게 아니라 무장해제한 상태로 있었으니까. 양희은이 게스트로 출연했을 땐 똑소리 나게 이건 맞다 아니다 설전이 오갔고, 말발 신해철이 왔을 때도 팽팽했다.
정 지난주 김건모의 가상 장례식은 의외였다. 게다가 웬 원더걸스? 뭐 사실 내 장례식에 빅뱅이 온다면 죽어서도 흐뭇한 일이지만 말이다.(웃음) 개인적으로 병원 입원했을 때 죽기 직전까지 갔던 때가 있다. 밖에서 의사가 ‘오늘 밤 못 넘길 수도 있다’는데 딱 속으로 ‘아! 베란다 청소 안 했는데 어떡해?’가 1번, ‘나랑 싸운 사람 나 계속 미워하면 어떡해?’가 2번이더라. 인생 중간정리 확실히 한 거지.(웃음) 그때 생각하면 사실 가상 장례식이라는 기획 자체는 시사하는 바 크다.
신 감동을 줄 수 있는 장치는 충분한 거지. 가상 장례식의 첫 타자가 이경규였다. 스스로 진지해지는 게 민망했는지 버럭 화내는 특유의 장난기를 발휘하더니 그쪽으로 확 틀더라. 시청자들이 웃음을 기대하는 건 맞지만 연예인의 진짜 속내를 듣고 싶었던 것도 있지.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만 까발리는 건 너무 많이 봤잖아.(웃음)
정 장례식이 되면서 김성주의 역할이 사라졌다. 출연자가 독한 말을 하면 중화제 역할을 하곤 했는데 이젠 박미선이 균형을 너무 잘 잡아 준다. 악동들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범생이랄까. 악동 패널들과 명랑하게 어울리려고 하는데 괜히 안 노는 애가 ‘나 놀았다구’ 하는 느낌이 드는 거지.
신 <명랑 히어로>는 이하늘의 재발견이다. 갈 데까지 간 것 같은 애가 알고 보면 가장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일 때 와락 밀려오는 감동? 유재석의 <놀러와>(문화방송)에서 요새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고정이 됐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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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엠시인 신동엽과 신봉선의 조합은 조금 더 두고 보고 싶다. 개그 작렬하는 신봉선은 엠시 울렁증이 있다는데 약간 주눅 들어 보인다. 노사연과 조형기 같은 선배 패널들에게 눌려서 그런가?
정 아무래도 최근 토크쇼의 내용을 채우는 게 출연자들의 ‘폭로’ 입담 대결이다 보니. 서열을 무시할 순 없을 거다.(웃음). <명랑 히어로> 장례식도 그렇고 <샴페인>의 토크도 부부 사이를 폭로하잖아. 폭로가 무조건 나쁘다고 보진 않는다. 단 대상이 되는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거. 어떤 연예인 중에는 그 폭로만 가지고 연예인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지. 그런 점에서 <샴페인>에 나온 이홍렬을 다시 봤다. 오랜 연예인 생활에 인맥도 많고 에피소드도 많을 거다.
이홍렬의 입담 여전히 대단하네
정 그런가 하면 〈MBC 스페셜〉이 최근 잇달아 연예인을 소재로 다뤄 화제다. 연예정보 프로그램 같다, 홍보성이란 평가도 있던데 난 재밌게 봤다. 이영애가 티셔츠 차림에 빅뱅 노래 듣고 삼각김밥 먹고 다니는 거, 우린 몰랐잖나. 사람들 우르르 대동하고 다닐 줄 알았는데.(웃음) 신선했다.
신 우리나라 연예인 다큐는 특히 취약하다. 일본만 봐도 연예인을 비롯한 인물 다큐가 풍부하다. 연예인 관련 자료가 방대하고 세간에 화제가 될 때 이미 그 인물 다큐를 보여줄 만큼 반응도 빠르다. 최근 스페셜에 나온 비, 이영애는 다 국민스타급이었지. 최정상만 보여주는 건 식상하지만 이들의 다큐를 볼 수 있다는 건 어쨌든 생큐다.
정 언론에 노출이 덜 된 이영애에 비해 비의 얘긴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박진영도 항상 비와의 에피소드를 말하잖아. 이제 유년 시절 고생이나 성공신화가 딱히 새롭지도 않다. 비는 정말 미친 듯 연습하고 짜릿한 성취감에 중독된 사람 같더라. 외국 배우나 트레이너들이 하나같이 ‘놀라운 사람’이라고 치켜세우는데, 그렇게 미친 듯 노력하는 사람은 좋아해줘야 한다 싶더라니까. 내가 별반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가.(웃음)
최진실, 옆집 언니와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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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침착한 인터뷰가 맘에 와닿더라. 보면서 90년대 초 ‘최진실의 진실’이란 <인간시대>를 봤던 기억도 나고.
신 그 수제비 먹는 장면! 내 곁에 있던 사람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인 거다. 중학교 땐 최진실 책받침을 썼었는데, 정말 최진실을 잊고 살았다 싶었다. 방송국도 어떤 면에서 무심했고. 최진실의 매력은 이영애와 다르다. 소탈하고 솔직하고 옆집에 가면 있을 것 같은 거지. 그 당시엔 미운 짓을 해도 ‘우리 누나가 잘됐으면’ 하는 심정처럼 그를 보곤 했다. 얌전이나 빼고, 신비스럽고 싶어 하는 그런 연예인이 아니었고. 다큐 하나가 여러 생각을 하게 하더라.
정 다큐를 보면서 어떤 톱스타든 곁에서 진심으로 충고해 주고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꼭 필요하구나 싶더라.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곁에서 누가 봐주고 함께 가주느냐가 중요한 거지.
신 박혜진 아나운서의 잔잔한 내레이션도 인물을 보는 시선에 안정감을 실어줬다. 다음 〈MBC 스페셜〉은 역도 장미란 선수라는데. ‘무릎팍 도사’에서 인기 끌었던 스타들을 다시 불러와 다큐멘터리로 재탕하는 건 아닌가 걱정도 살짝 된다.
정 비나 장미란 등 다 토크쇼에서 의외의 반응을 끌어낸 인물이었다. 역도할 땐 상상도 할 수 없던 장미란의 유머, 〈MBC 스페셜-내겐 너무 아름다운 그녀〉가 어떻게 아름다울지 궁금하다.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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