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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줄을 쓰기 전에 백 줄을 읽어라
안도현 시인이 시를 쓰고 읽는 법을 자상하게 가르쳐 주는 안도현의 ‘시와 연애하는 법’을 새롭게 연재한다. 대한민국에서 시를 가장 잘 쓰는 이 중 한 사람인 안 시인의 안내를 받아 시와 연애에 빠져 보자
지루한 일상 너머 소통과 상상 가능
시집은 언제든 연습할 수 있는 ‘악기’
맛난 음식 만힝 먹어야 요리도 잘해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독(多讀)·다작(多作)·다상량(多商量), 곧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이 세 마디의 가르침은 10세기 중국 북송 때의 문인 구양수가 남긴 말이다. 자그마치 천 년 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때로 글쓰기를 가르치는 사람에 따라서 이 세 가지의 순서를 편의대로 바꾸기도 한다. 어떻게 하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하기엔 실로 벅차기 짝이 없다. 시간도 많지 않다.
나는 시를 쓰려는 당신에게 색다른 세 가지를 주문하려고 한다.
첫째, 술을 많이 마셔라. 그렇다고 혼자 마시면 안 된다. 술이란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매개이지 주정을 부리기 위한 약물이 아닌 것이다. 술을 마시면서 지루한 일상 너머를 꿈꾸는 일은 시인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시인은 일상이라는 유리그릇을 박살내는 자가 아니다. 유리그릇에 빗금을 긋는 자이기 때문이다. 한 편의 시를 쓰려거든 백 잔의 술을 마신 다음에 쓰라. 그렇다고 해서 술이 깨지 않은 비몽사몽의 시간에 펜을 잡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 ‘취중진담’이라는 말은 있어도 ‘취중진문’이라는 말은 없다. 나는 지금도 ‘주력(酒力)은 필력(筆力)’이라는, 세상에 있지도 않은 말로 학생들을 꼬드겨 술잔을 권한다.(단, 마시기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권하지 않으며, 그런 사람하고는 상종할 일이 별로 생기지 않는다.)
둘째, 연애를 많이 하라. 천하의 바람둥이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무릇 모든 연애는 나 아닌 것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연애시절에는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연애의 상대와 자신의 관계를 통해 수없이 많은 관계의 그물들이 복잡하게 뒤얽힌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리고 훌륭한 연애의 방식을 찾기 위해 모든 관찰력과 상상력을 동원하기 마련이다. 연애는 시간과 공을 아주 집중적으로 들여야 하는 삶의 형식 중의 하나인 것이다. 연애감정도 없이 시를 쓰려고 대드는 일은 굳은 벽에 일없이 머리를 부딪치는 것과 같다. 담쟁이넝쿨은 담하고 연애하면서 담을 타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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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자 최한기는 그의 방대한 저서 <인정>에서 “문장은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잔재주가 아니라 오랜 세월 노력이 쌓여야 한다”고 했다. 정약용은 두 아들에게 부치는 편지 형식의 글을 통해 읽기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한 바 있다.
“삼대 이상 의원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병 치료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문장 또한 그렇다. 반드시 오래도록 노력한 다음에야 능숙하게 글을 지을 수 있다. 글을 쓰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세상을 다스리는 경학(經學)을 읽어서, 문장의 기초와 뿌리를 단단하게 세워두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역사 관련 서적들을 두루 공부하여 나라와 개인이 흥망성쇠하는 근원을 알아야 하고, 일상생활에 유용한 실용 학문에도 힘을 쏟아 옛사람들이 남겨 놓은 경제서를 즐겨 읽어야 한다. …내가 말한 대로 해 본 다음에 안개 낀 아침이나 달 밝은 밤, 짙은 나무 그늘과 가랑비 내리는 때를 만나면 문득 감흥이 일어나 시를 읊게 되고, 문장의 구상이 떠올라 글이 써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늘과 땅, 자연의 소리가 맑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생동감 있는 글을 짓는 문장가의 창작 활동이다.”
나는 시창작 강의 첫 시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시집 목록을 프린트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모두 200권쯤 된다. 목록을 받아든 학생들의 입이 딱 벌어진다. ‘어느 세월에?’ 하는 표정들이다. 내가 강의하는 건물에는 국악과가 있어 가야금이나 거문고 따위를 들고 오르내리는 학생들이 자주 보인다. 시를 쓰는 사람에게는 시집이 악기라고 설명한다. 시집은 악기처럼 비싸지 않고, 무겁지 않고, 고장이 나지도 않는다. 시집을 읽기 위해서는 연주 연습을 하듯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정하지 않아도 된다. 언제, 어디에서든 가방에서 잠깐 꺼내 읽을 수 있다.
고등학교 때는 시집을 읽다가 마음에 쏙 드는 시를 만나면 노트에 적어두었다. 그렇게 필사한 시가 대학노트 세 권에 가득하였다. 지금도 문예지를 읽다가 좋은 시를 만나면 반드시 따로 옮겨 적어 둔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필사를 권한다. 아니, 거의 강요한다. 한 학기를 마칠 때쯤이면 수백 편의 시가 적힌 자기만의 시집이 오롯이 남으니, 꿩 먹고 알 먹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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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막상 주위에 시 한 편도 시집 한 권도 옆에 없다면 어찌해야 하나? 그때는 귀를 열고 들으면 된다. 세상의 여러 소리를 듣는 행위도 책을 읽는 행위와 별로 다를 게 없다. 기형도는 어릴 적에 열무를 팔러 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며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새어드는 빗소리를 들었다. 황동규는 <풍장 27>(아래 시)에서 빗소리를 듣기 위해 세상 뜰 때 귀만 두고 가겠다고 한다. 손과 발과 입과 눈은 가지고 가겠다고 한다. 오직 귀만 두고 가는 이 마음 역시 세상을 귀로 읽으려는 귀한 자세다.
내 세상 뜰 때
우선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입을 가지고 가리.
어둑해진 눈도 소중히 거풀 덮어 지니고 가리.
허나 가을의 어깨를 부축하고
때늦게 오는 저 밤비 소리에
기울이고 있는 귀는 두고 가리.
소리만 듣고도 비 맞는 가을 나무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귀 그냥 두고 가리.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