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 "꿈을 비는 마음" / (늦봄 문익환) 개똥같은 내일이야 꿈 아닌들 안 오리오 마는 조개 속 보드라운 살 바늘에 찔린듯한 상처에서 저도 몰래 남도 몰래 자라는 진주같은 꿈으로 잉태된 내일이야 꿈 아니곤 오는 법이 없다네. 이전에 이런 영화제목이 있었습니다. '개같은 날의 오후'라는... 그 말마따나 우리네 사는 현실이 정말 개같습니다. 하루 하루의 일상이 개같다 보니 다가오는 미래도 개똥같습니다. 아, 꿈 한 번 아니꿔도 낯뜨겁게 잘도 다가오는 "개똥같은 내일". 시인은 질끈 눈을 감습니다. 단지 현실이 보기 싫어서 그러는 것만은 아닙니다. 밝히 말하자면, 그것은 절대적인 반항의 몸짓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실과는 다른 세계를 꿈꾸는 불온하기 짝이 없는 도발이라고나 할까요. 시인은 눈을 감고 진주같은 꿈으로 잉태된 내일을 꿈꿉니다. 진주같은 꿈. 그것은 현실의 아픔과 전혀 무관한 일부 특권층들이 선망하는,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귀족적이고 달콤한 낭만적인 로망스가 아닙니다. 그것은 닳고 닳은 상처에서 핏빛으로 꽃피어나는 민중의 끈질긴 숨결입니다. 그러니 벗들이여! 보름달이 뜨거든 정화수 한 대접 떠놓고 진주같은 꿈 한 자리 점지해줍시사고 천지신명께 빌지 않으려나! 배반적인 현실 앞에서 시인의 소망은 아직 무력한 꿈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널리 널리 퍼져 수천 수만 벗들의 가슴에서 이른 새벽 보름달 아래 정화수 한 대접 떠놓고 비는 지극한 기도로 피어 오를 수 있다면, 정말 그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가난한 자의 헛된 푸념이 아니라, 변혁을 갈망하는 뜨거운 눈길, 개벽을 앞당기는 소리없는 주문, 진주같은 꿈으로 잉태된 내일을 앞당기는 거대한 함성, 개똥같은 내일을 잉태하는 개같은 세상을 뒤집어 엎는 거대한 해일이 될 것인즉, 그러니 벗들이여! 시인의 부름에 응해, 보름달 아래 정화수 한 대접 떠놓고 진주같은 꿈자리 하나 점지해줍시사, 우리의 소원 하늘에 가 닿도록 더불어 같은 꿈을 꿔보는 건 어떠합니까. 그리하다보면 그 꿈이 어느날 말끔한 현실로 깨어날런지 뉘 압니까? 벗들이여! 이런 꿈은 어떻겠오? 155마일 휴전선을 해뜨는 동쪽바다 쪽으로 거슬러 오르다가 오르다가 푸른 바다가 굽어보이는 산정에 다달아 국군의 피로 뒤범벅이 되었던 북녘 땅 한 삽씩 떠서 합장을 지내는 꿈, 그 무덤은 우리 5천만 겨레의 순례지가 되겠지. 얼마나 분단의 장벽이 한스러웠으면 꿈에서조차 휴전선이 보일까? 얼마나 분단의 세월이 한스러웠으면 휴전선을 거슬러 오르는 꿈을 꿀까? 시인을 따라, 시인과 함께, 우리는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위.아래로 허리 잘린 조국을 어루만지며 순례하는 꿈. 그렇습니다. 우리가 거슬러 올라갈 그 곳은 반드시 해 뜨는 동쪽이어야 합니다. 어둠을 몰아내는 밝음이 있고, 옛것을 몰아내는 새로움이 있는 그곳! 또한 그곳은 반드시 푸른 파도 굼실거리는 동해바다여야 합니다. 강물을 끌어안는 넉넉함이 있고, 분쟁을 종식시키는 평화로움이 있는 그곳! 해 뜨는 동녘, 푸른 바다 굽어보이는 산정에 다달아 우리는 무덤을 세웁니다. 그리고 국군의 피로 범벅된 북녘 땅을 한 삽씩 떠서 합장을 지냅니다. 증오와 대립은 이로써 마감되고, 평화의 새날이 오기를 기원하면서... 이곳이 하나된 땅, 해방된 조국의 성지가 되기를 염원하면서... 그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다 보면 사팔뜨기가 된 우리의 눈들이 제대로 돌아 산이 산으로, 내가 내로, 하늘이 하늘로, 나무가 나무로, 새가 새로, 짐승이 짐승으로,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보이는 어처구니 없는 꿈 말이외다. 동해 산정에 세운 무덤, 그곳은 우리에게 참회의 도량, 각성의 장소입니다. 아니, 사팔뜨기가 된 우리의 눈들이 제대로 돌아오는 치유의 마당입니다. 서로 붙들고 울다 울다 보면 독기조차 어느새 눈물로 빠지고, 마침내 맑디 맑은 눈빛 회복하게 되는 구원의 성소입니다. 시인에 의하면, 이 땅의 모든 문제는 그릇된 시선에서 연유합니다. 산을 산으로, 내를 내로, 하늘을 하늘로, 나무를 나무로, 새를 새로, 짐승을 짐승으로, 나아가 사람을 사람으로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팔뜨기들의 세상! 과연 그렇지요. 비정상이 정상으로 치부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에서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난해한 법어를 연상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옳음이 그름이 되고, 그름이 옳음이 되는 가치전도된 현실, 사람을 짐승 취급하고, 짐승을 사람 취급하는 이 패역한 세상에서는 시인의 절규가 필경 '어처구니 없는 꿈'일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 (사)통일맞이 홈페이지 대문화면 캡쳐 2. 하여, 말하노니, 이런 꿈은 어떠합니까? 민족을 배반하고, 독재를 찬양하며, 분단을 조장하고, 지역을 편가르며, 나라야 어찌되든 제 배 불리고, 제 잇속 차리는데만 재빠른 못된 자들은 죄다 청산되고, 거짓으로 참을 삼고, 곡필을 정론인냥 위장하며, 여론을 호도하고, 권력을 탐하며, 나라야 어찌되든 제 기득권 챙기는데만 여념이 없는 못된 언론들은 모두 다 준엄한 심판을 받으며, 대신 사실을 사실대로만 보도하는 바른 언론과 더불어 착하고 순한 사람들이 올망졸망 서로 도우며 대동세상 이루어 길이길이 행복하게 사는 어처구니 없는 꿈 말입니다. 또한 학교가 즐거운 곳이 되고, 학생들은 맘껏 뛰놀며, 학교 간판이 필요 없고, 학연이 존재하지 않으며, 일등과 꼴찌가 다 같이 우대받고,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여성이나 남성이나, 혹은 생김생김을 떠나서 다 같이 편견과 차별, 소외와 두려움 없이 모든 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겁게 사는 어처구니 없는 꿈 말입니다. 그리고 북은 남을 얻어 태평양에 닿고, 남은 북을 얻어 대륙에 뻗쳐 한반도가 세계의 배꼽이 되고, 새로운 문화중심지가 되어 대한의 이름이 온누리에 빛나며, 동해가 동해로, 독도가 독도로 우뚝 서고, 영어를 배울 필요가 없이 한글이 세계의 언어가 되며, 한국인이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어처구니 없는 꿈 말입니다. ▲ 문한별 편집위원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님 비나이다. 밝고 싱싱한 꿈 한 자리, 평화롭고 자유로운 꿈 한 자리, 부디부디 점지해 주사이다) [덧글] 문성근 씨의 <무릎팍출연>을 계기로 그의 부친인 문익환 목사의 행적에 새삼 눈길이 쏠리고 있다죠? 한편으로 반가우면서도 씁쓸한 느낌을 금할 수가 없더군요.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있기까지 그이에게 빚진 것이 한둘이 아닌데, 그이의 고난과 희생에 대해 무지하다 못해 무관심한 작금의 세태가 말에요.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역사의 비참은 문 목사의 꿈을 잃어버린 결과 아닐까요? 문한별/편집위원
 
댓글은 로그인 사용자만 작성 가능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