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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영어선생으로서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막내딸에 대한 애끓는 부정을 엿볼 수 있었다.

 

[오마이뉴스 최일화 기자]

2009.8.1

나는 막내딸의 성적표를 아예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보면 속상하기만 할 텐데, 라며 기분 상할 것에 미리 방어책을 마련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지 애비가 30년 동안 고등학교 영어선생을 하면 아이들이 알아서 솔선수범해 애비 체면 좀 세워주면 어디가 덧나나? 20대 후반이 된 쌍둥이 두 딸의 성적이 영 시원찮아 지금까지도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한껏 기대를 모았던 늦둥이까지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곤두박질치는 성적엔 이제 두 손 바짝 들고 만 상태다.

저번에 아내가 무슨 얘기 끝에 한 말이 또 내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


"성적표가 나왔는데 수학이 '미' 영어가 '우'……"


아내가 우물쭈물 얼버무렸다. 나는 금세 기분이 상해져 아내의 말을 가로 막았다.


"애들 성적 얘기는 하지 말라고 했잖아!"


내 핀잔을 들은 아내도 시무룩해져 입을 다물어버렸다. 지난 2월부터 학원 수학강사에게 1주일에 두 번 과외공부를 시켰는데도 '미'라는 말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영어는 내가 교과서 시험 범위를 두 번이나 같이 가르쳐줬는데도 또 '우'란 말인가? 수학을 해야 한다고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수학점수 향상을 은근히 기대하며 영어문제집 푸는 걸 그냥 생략하고 말았더니 영어 점수가 엉망이 되고 말았다. 다른 과목은 보나 마나일 거다. 한문이나 '우'나 '미' 나왔을 것으로 짐작이나 할 따름이다. 나머지 과목은……?


지금 학교에선 상대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학생 전체를 일렬로 늘어놓는 점수 부여 방식이다. 내신 부풀리기를 막는 데 목적이 있다지만 참 불합리한 평가방식임엔 틀림없다. 그래 소수점 이하의 점수 차로 '수'가 되고 '우'가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만약에 절대평가로 한다면 한 반에 과목 당 '수'를 받는 학생이 열 명 스무 명이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울며 겨자 먹기로 상대평가를 실시하는 교육 시책을 왜 모르겠는가?


이 정도 점수로 인문계 고교에 진학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2학기 시작과 함께 진학 문제는 곧 닥칠 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담임선생님도 막내딸에 대해 실망을 하고 있을 것이다. 생활기록부와 면담을 통해 내가 영어교사인 걸 다 알 텐데 딸의 점수가 영 형편없으니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담임교사에게 무슨 책임이 있겠는가? 공부를 하지 못하게 방해를 한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실은 딸네 학교 교장이 내 고등학교 2년 선배였다. 교장이 전근하니 새로 온 교감이 전에 같이 근무했던 영어교사로 나이로는 후배뻘이 된다. 그래도 나는 한 번도 딸이 그 학교에 다닌다는 내색을 않고 있다. 한 번도 학교에 찾아간 적이 없다. 찾아가기는커녕 전화 한 번 한 적도 없다. 딸의 저조한 성적이 늘 마음 한 구석에 짐으로 얹혀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긴 성적이 좋다 하더라도 나는 학교에 가지 않는다. 그것이 내 방침이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담임선생님을 찾아가는 것 자체가 불공정 게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시 딸이 전교 1등이라도 하면 학년 말에 찾아가 담임선생님과 식사 한 번 할지는 몰라도 나는 내가 교사이기 때문에 더 찾아가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내가 찾아간다고 딸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딸에게 괜히 부담만 주는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딸들이 스스로 독립심을 키워나가길 바라는 것이다.


한 번은 담임선생님이 막내딸과 면담을 했단다. 그 성적으로는 인문계 원서 써줄 수 없다고 했다던가. 갈수록 태산이다. 난처하고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딸들에게 1·2 등을 하라고 주문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분을 삭일 수가 없다.


나는 딸의 다른 재주를 생각해보기도 했다. 혹시 예체능에 소질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어렸을 때 하도 몸동작이 빠르고 신체발육이 빨라 혹시 운동에 재주가 있는 건가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커갈수록 살펴보았지만 운동선수 형은 아니다. 어려서 사람 그림을 엄청 많이 그려서 혹시 미술에 소질이 있나 살펴보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둘째가 은사인 피아노교수에게 막내를 데리고 간 일이 있다. 막내의 손을 살펴보던 교수가 피아노를 하기에 아주 좋은 손이라고 칭찬을 하더라는 얘기를 들은 일이 있다. 그러나 피아노도 몇 해 하더니 싫증을 내 중단하고 말았다. 꾸준히 스스로 하는 것이 소질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할 것이다.


이제 대안이 없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적성에 맞게 대학에 가는 길밖에 없다. 종종 나는 40여 년 전 내가 학교 다닐 때와 요즘 아이들을 비교하는 우를 범해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학원 한 번 안다니고 시골집에서 끙끙거리며 촛불 아래 혼자 공부하던 나 자신을 생각하며 늘 아이들에게 학원보다는 혼자 열심히 공부하라고 강조해 왔다.


세상 물정 모르고 내가 고집을 부린 셈이다. 요새는 학원 안 가고 혼자 공부한다는 것이 비효율적인 진부한 공부법일 텐데 나는 아내의 얘기는 듣지도 않고 옛날 내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나도 혼란스럽다.


막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지금 3학년 1학기를 끝마친 시점까지 매번 기대와 실망의 연속이었다. 늦둥이 딸이 또 나의 자유를 구속하고 사념을 방해한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텐데……. 학교에서도 인정받고 부모 사랑도 듬뿍 받을 텐데 ……. 안타깝기만 했다.


다친 다리를 수술하느라고 4주일간 입원했다가 엊그제 퇴원하고 보니 막내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제멋대로 텔레비전과 컴퓨터 사이를 헤엄쳐 다닌 모양이다. 안되겠다. 이제부터라도 붙잡고 해야겠다. 다시 영어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 이대로 그냥 놓아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 막내딸 학습향상 프로젝트(Last Daughter Project)를 세워보기로 했다. 특별할 건 없다. 좀 더 관심을 기울여 딸의 그릇된 학습방법과 부족한 학습동기의 원인을 따져 보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합리적으로 목표를 정하자. 실현 불가능한 과제는 실패로 직결되지 않겠는가. 수학은 '우'를 목표로 하고 과외는 계속하기로 한다. 영어는 '수'를 목표로 하고 2개월 꾸준하게 내가 지도하기로 하자.


2009. 8.2

성적 오르기만 바랐지 따뜻한 관심을 기울였던가? 인내심을 가지고 올바른 공부법이 몸에 배도록 한 것이 아니라 윽박지르고 고함을 지르며 나쁜 공부 습관을 질타하기만 하지 않았나? 그동안 내가 딸들의 공부를 방해한 측면도 있다. 프로젝트의 첫 단계는 딸의 공부습관 파악하기다. 지나치게 핸드폰을 상용하고 텔레비전과 컴퓨터에 매달림으로써 학습시간을 거의 전부 빼앗기고 있는 상태가 걸림돌이라는 것이 금방 들어왔다.


지금 정오가 다 되어 가는데 딸은 자고 있다. 어제 밤 새벽 두 시까지 책상에 앉아있었던 것을 알지만 일요일이나 방학 때 너무 잠을 많이 자는 것은 분명 문제다. 학교 다닐 때는 그렇지 않다. 아침 6시면 제일 먼저 일어나 매일 목욕을 하고 등교준비를 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나도 아주 칭찬해주고 싶은 좋은 습관이다.


문제는 일요일과 방학이다. 더 살펴보아야 할 문제다. 시간 관념이 부족한 것이다.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할 방안이 필요하다. 몇 번 깨웠으나 좀체 일어나지 못한다. 습관의 힘은 무섭다. 당분간 지켜보며 방안을 강구하자. 하나씩 문제를 파악해서 해결책을 마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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