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생활 지침서

이온디
2009년 08월 09일

'동거생활 지침서'라곤 하지만 실상 읽어보면 그다지 도움이 되는

지금은 이웃집 드나들듯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구미 선진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글로벌 시대지만, 그들을 떠나 보내는 부모의 불안한 심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툭하면 일어나는 캠퍼스의 총기 사고와 만연한 프리섹스 사조는 특히 딸자식을 해외로 보낸 부모가 겪어야 할 필수적 고민거리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실제로 미국여행 중에 필자도 남자와 동거생활 중인 한국인 여학생을 만난 적이 있으며, 또한 영어 연수를 받던 어느 남미 교포 자녀는 당장 진료가 시급한 성병을 가지고 그대로 귀국 항공기에 오르는 것을 보았다.

지 금쯤 불임증이 되어 있을 그 여학생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걱정되면서도 그 부모가 그런 사정을 알고나 있을까 자문해 본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교육계 인사들에게 들어보면, 미국 대학 사회의 남녀는 성적 필요에 의해 서로 미래에 대한 부담 없이 결합했다가 목표로 삼았던 학위취득이 이뤄지면 그날로 헤어지는 동거에 별 저항감 없이 빠져든다고 이야기한다.

민법으로 법적 보호를 받는 결혼에서도 앞으로 예상되는 분쟁에 대한 화해조서 형식으로 결혼계약서를 작성할 만큼 치밀한 미국인들이므로 결합력이 느슨한 동거생활의 동거계약서 작성은 자기를 보호하는 수단으로서 필수적인 백신 같은 것이다.

동거가 워낙 일반화되다 보니 『Living Together Kit』라는 동거를 위한 해설서가 서점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실제로 동거 남녀는 그런 책을 마스터한 사람들이다. 랄프 워너와 토니 이하라라는 젊은 남녀 변호사가 저자인데, 직접 동거하면서 경험한 사례에서 해답을 마련한 것이므로 동거생활에 도움이 될 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

이를테면 남의 집에 셋방을 들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은행 예금의 명의는 누구 앞으로 하는가에서부터 아기의 이름은 어떻게 지을 것인가, 어느 한쪽이 죽으면 받게 될 유산의 처리문제 등을 친절하고 정중하게 해설해 놓았다. 대체로 우리 상식과 일맥상통하는 해설을 보게 되지만 은행 예금통장 명의에 관해서 만큼은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다.

‘한 사람의 명의로 하나의 계좌를 가지려는 커플에게 드리는 우리의 충고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절대로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어느 한 쪽의 사인만으로 예금을 찾을 수 있게 되어 있다면, 어느 한 쪽이 송두리째 인출해 도망쳐도 은행은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인데 실제로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미 국 생활에서 필수적인 자동차 구입 시 생기는 문제는 복잡하기만 하다. 둘이 공동출자해 차를 구입했을 때 누구의 명의로 등록하는가, 헤어질 때는 차를 어떻게 처분하는 것이 좋은가, 또는 두 사람이 여행 중에 호텔에 묵을 경우 부부인 척하고 숙박부를 쓰면 현행법에 저촉되는가 등 까다로운 문제들이 망라되어 있다.

이렇게 성가시면 차라리 결혼하는 편이 훨씬 간편하다고 생각할 정도다. 이 해설서는 나중에 생길 트러블을 피하기 위해 동거에 즈음해 사전에 동거계약서를 작성해 둘 것을 강력히 권유한다. 하지만 실제로 동거하는 남녀 학생은 거의 빈털터리기 때문에 서로 헤어질 때 문제가 될 법한 것은, 더블베드 정도에 불과하고 별다른 분쟁의 요소가 없다.

이처럼 서양은 동거에 관대하지만 동거는 앞으로의 결혼생활에 도움을 주기보다 갈등을 유발한다는 학자의 의견이 있다. 결혼은 신뢰와 사랑을 토양으로 자라는 장미 같은 것이므로 그것 없이 함께 사는 생활방법은 부질없이 갈등만 증폭시킬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 항목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설명하기로 한다.

곽대희비뇨기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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