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관계자가 전한 1983년의 비화 |
이관범기자 frog72@munhwa.com |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가로 변신한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호암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에게 길을 물었다. 정확히 27년전이다. 1980년대 당시 호암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한 이형도(67) 삼성전기 부회장(상담역)이 1일 기자와 만나 공개한 기록에 따르면 호암과 잡스는 1983년 11월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 호암 집무실에서 만났다. 당시 호암은 타계하기 4년전인 일흔세살의 노구를 이끈 채 삼성과 국가의 명운을 걸고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는 필생의 도전에 나선 때였다. 잡스는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어 하루 아침에 유명인이 된 스물여덟살의 새파란 젊은 사업가였다. 잡스는 호암과 만난 자리에서 이듬해 출시할 ‘매킨토시’ 컴퓨터를 자신만만하게 소개했으나 그때만 해도 참담한 실패로 인해 5개월 만에 본인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날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을 시기였다. 호암은 그 자리에서 “굉장히 훌륭한 기술을 가진 젊은이”라며 “앞으로 IBM과 대적할 만한 인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어 호암은 자신에게 경영자로서의 길을 묻는 잡스에게 세계적인 사업가로서 살아오면서 철칙처럼 지켜온 세가지를 당부했다고 한다. “우선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확인하고, 인재를 중시하며, 다른 회사와의 공존공영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는 게 그것이었다. 잡스가 뒤늦게 호암의 가르침을 깨달은 걸까. 10년만에 돌아와 쓰러져가는 애플을 일으켜 세우고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기업가정신이 투철한 기업으로 대도약시킨 잡스는 완전히 딴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독선 대신 집단창의를(인재중시), 기술 지상주의 대신 철저히 고객중심 사고를(인류기여), 독자개발 대신 대외협력(공존공영)을 중시하는 리더로 거듭나 있었던 것. 특히 음악·영화·도서 등 문화계나 1인 소프트웨어(SW)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생산물을 사고 팔 수 있는 인터넷장터인 앱스토어를 고안하고 이를 MP3 플레이어·스마트폰·태블릿PC 등과 연계해 나가려는 시도는 호암이 그토록 강조했던 대표적인 공존공영 모델이다. 이 부회장은 “(잡스가 재기에 성공한 과정을)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호암이 잡스에게 전했던 3대 경영철학이 향후 애플의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반영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회고했다. 이관범·김만용기자 frog72@munhwa.com |
기사 게재 일자 2010-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