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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갑시다

이온디
2007년 08월 19일
※ 이 시는 허수경 시인의 소풍갑시다라는 시를 리메이크한 시입니다.

우리 한 생을 살면서 서로가 맑은 즐거움을 모르고 살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워낙에 사랑받지 못해서 그리고 사랑할 줄 몰라서 아마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소풍갑시다>

그대가 나의 누이이거나 혹은 그대가 나의 오라비가 될 때
그 때 우리 함께 소담한 도시락을 들고 소풍을 갑시다.

아직 우리는 소풍을 가질 나날을 이 지상에서 가질 수 있어요.
우리는 그 권리가 있어요.

소풍을 가는 날,
가만히 옷장을 보면 아직 입지 못한 옷들이 들어있어도 그냥 둡시다.

매꽃 피는 그 천변에서 우리는 다시 돌아올 것이므로, 돌아올 것이므로,
그 날 그 소풍에 가지고 갈 도시락과 그리고 와인 한 병도 준비하고

그대가 내 오라비로만 이 지상에서
그대가 나의 누이로만 이 지상에서 살아갈 것을 서약은 할 수 없을지라도

오랜 뒤에 내가 그대를 발굴할 때,
그대의 뼈들이 그 자리에 고요히 다 붙어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먹고 남은 도시락이 저 천변 어느 한 자락 햇볕 드는 마루에서마저 아늑해는 날이 올지라도
우리는 소담한 매꽃이 피었다가 허공에 흩뿌려지는 그 여름 날에, 오 오 우리 함께 소풍을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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