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정보습득력 향상됐지만 비판적사고·분별력 약해져
디지털 의존이 ‘치매’ 낳기도…최신연구 결과 소개
니컬러스 카가 펴낸 ‘인터넷이 뇌에 끼친 영향’ 논란# 40대 회사원 이영식씨는 스마트폰에 푹 빠져 있다. 언제 어디서나 궁금한 것을 인터넷에서 바로
찾아볼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을 산다. 대중교통을 탈 때는 트위터와 이메일에 접속해 무한한 정보를 쉼없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잠시라도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는 곳에 있으면 머리칼 잘린 삼손처럼 무기력해짐을 느낀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덕분에 많은 정보를
이용하지만 낯익은 전화번호나 집주소도 기억나지 않을 때면 ‘디지털 치매’라는 것도 실감한다.
김병천씨는 자동차가
필수인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사는데, 차량에 내비게이션 대신 수십개의 권역별 지도를 갖춰놓고 운전한다. 비용도 시간도 더 많이
들지만 김씨는 지도로 길을 찾는 방식을 좀체 바꾸지 않고 있다. 길찾기의 재미인 오리엔티어링을 넘어서, 공간에 대한 감각과
인지능력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다.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등 다양한
정보화기기를 사용하게 된 인간은 더 똑똑해졌을까, 멍청해졌을까? 정보화기기가 인간의 인지능력에 끼치는 결과에 대한 도발적 주장을
담은 책 <얄팍함: 인터넷이 뇌에 끼친 영향>(사진)이 지난달 미국에서 출판돼, 정보기술과 인지과학 분야에서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
저자 니컬러스 카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편집장을 지낸 정보기술 분야 저명
저술가로, 국내에도 그의 책 <빅 스위치>가 번역소개됐다. 카가 2008년 여름 <애틀랜틱>에 실은 글
‘구글은 우릴 바보로 만드는가’는 정보기술이 인간 인지능력을 퇴화시킨다는 주장을 펼쳐 열띤 논쟁을 불렀다. 카는 이번에 2년 전
주장을 더욱 발전시키고 인지과학자들과 신경의학자들의 다양한 실험과 연구 결과를 반영해 한층 강화된 논거를 바탕으로 책을 펴냈다.
책
에는 인터넷 사용이 인간 사고와 인지구조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근래의 흥미로운 실험과 연구가 소개돼 있다. 발달심리학자 퍼트리샤
그린필드는 지난해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다양한 미디어기술이 인지능력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비디오게임과
마찬가지로, 컴퓨터 조작은 스크린 가득한 이미지와 아이콘들 사이에서 초점 맞추기를 빨리 하게 해주는 시각적 인지능력을
향상시키지만, 이는 동시에 엄밀하지 못하고 반사적인 사고습관을 갖게 된다는 게 연구 결과였다.
코넬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시간에 학생 절반은 노트북을 통해 인터넷을 사용하게 하고, 나머지 학생은 컴퓨터를 쓰지 못하게 한 결과, 인터넷을
사용한 그룹이 수업 내용과 관련된 시험에서 훨씬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그린필드는 “화면 미디어 사용은 항공기
조종처럼 동시에 수많은 정보를 인지할 수 있는 공간인지 능력을 개선시켰다”며 “하지만 이는 추상적 어휘, 반성, 연역적인
문제해결, 비판적 사고, 상상력과 같은 고도의 인지 구조를 약하게 만들었다”고 결론지었다. 한마디로 인간의 사고가 ‘얄팍’해졌다는
것이다.
스탠퍼드대 상호작용성 미디어랩의 클리퍼드 나스 교수는 101명을 대상으로 ‘동시
다중작업수행(멀티태스킹)’의 효과를 실험했다. 멀티태스킹을 많이 하는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주의력이 산만하고 사소한
것들에서 중요한 정보를 식별해내는 능력이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애초 멀티태스킹의 장점이 더 많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신경과학자 마이클 머츠니히는 갈수록 늘어나는 인터넷과 정보기기 사용이 우리의 두뇌 구조를
개조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는 수십년간 영장류에 대한 일련의 실험연구를 통해 외적 자극이 뇌구조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그는
인터넷 과다 사용으로 인한 주의력 분산과 사고 단절이 인간 지적생활에 끼치는 장기적 영향은 ‘치명적’이라고 우려했다.
인
간 두뇌의 능력을 외부의 보조장치를 통해 연장하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논란거리였다. 플라톤의 <파에드로스>에는
소크라테스가 글쓰기의 발달을 탄식하는 장면이 나온다. 머리에 생각을 넣어두는 대신 문자에 의존하게 되면 기억력 훈련을 하지 않고
더욱 잘 망각하게 될 것이란 우려다. 제대로 된 훈련 없이 엄청난 양의 정보를 다루기 때문에 실제로는 어리석으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많은 지식을 갖췄다고 착각할 수 있다는 걱정이다.
구텐베르크의 인쇄혁명 당시에도 출판물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부작용 우려가 있었고, <논어>엔 ‘배우되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어리석다’(學而不思則罔)는 구절이 있다.
유
한한 인간 지적 능력이 디지털기기와 기술의 도움으로 크게 확장되었지만 심층적 사고력이 훼손된다는 이런 주장은 인간 인지능력과
정보화 기술 간의 딜레마적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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