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의 세 번째 영화 <오! 수정>이 우리 곁으로 왔다. 이 영화 역시 내용보다는 형식이 주목을 끄는 영화이다.
만드는 영화마다 (관객의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비평의 주목을 받는 홍상수는 행복한 감독임에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얘기하자면
<오! 수정>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통상적인 영화에서 그려지는 가슴 저미는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방송
작가인 20대 여성 수정(이은주 扮), 수정과 짝을 이루면서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는 PD 영수(문성근 扮), 수정을 사랑하는 화랑
운영자 재훈(정보석 扮)의 미묘한 삼각 관계가 영화를 끌고 가는 내러티브지만, 삼각 관계의 안타까움이나 긴장은 없다. 홍상수의
모든 영화가 그렇듯이 <오! 수정>의 인물들은 나름대로의 주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런 주관이 영화의 상황과
모순을 일으키거나 지나치게 진지해서 웃음을 유발함으로써, 인물들이 지니고 있던 주관이 한낱 '개똥철학'임이 밝혀진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효섭이 재판장에서 토하는 열변이나, <강원도의 힘>에서 지숙이 술에 취해
친구에게 내뱉는 말에서 드러나는 '개똥철학'이 이 영화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오! 수정>의 대사는 계속해서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거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진지함으로 웃음을 유발한다.
호텔에서 수정을 기다리던 재훈이 아직도 집이라는 수정의 전화에 "천천히 택시타고 와요" 라는 말을 하는 장면을 보자.
'천천히'라는 단어와 '택시'라는 단어는 조어될 수 없는 단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진지하게 이런 말을 한다. 고정된 채
오래 지속되는(long take) 흑백 톤의 단조로움을 모순적 상황이 야기하는 웃음으로 극복해나간다. 때문에 홍상수의 어떤
영화보다 <오! 수정>은 코미디이다. 155개의 커트로 되어 있으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유쾌한 코미디가 아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 역시 영화 속 인물과 같은 부류의 인간이라는 점에서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게 만드는, 의도적으로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오! 수정>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영화의 형식이다. 홍상수 영화에서 형식을 제외한다면? 김시무의 예리한
지적처럼, 형식을 논외로 한 홍상수는 없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감독은 <오! 수정>이 5부라고 하지만 3부나
2부로 여겨진다. 감독은 1·2부가 남자의 시선, 3·4부가 여자의 시선, 5부가 통합된 시선이라 하지만 그것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대신 남자의 시선인 1부, 여자의 시선인 2부, 통합된 시선인 3부나, 남자의 1부, 여자의 2부로
보여진다. <강원도의 힘>과 같은 형식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몇 부의 형식이냐가 아니라 같은
상황이 남자와 여자의 시선에 따라 다르게 '기억'된다는 점이다. 남자의 시선에서 보여졌던 사건이 여자의 시선으로 보여질 때,
처음에는 미세한 대화의 차이에 그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장소와 시간과 대화가 몽땅 달라져 버린다. 형식주의식으로 말하자면 차이를
포함한 반복이 되겠지만, 그것보다는 기억하기 좋은 것만 기억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억하려는 인간의 이기주의를 보여준다고
하는 것이 그럴듯한 해석일 것이다. 영수가 기사와 싸웠을 때, 영수의 기억에서는 자신이 먼저 사과해서 통 큰 남자임이 강조되지만,
수정이 기억하는 그것은 영수가 일방적으로 기사에게 뺨을 맞는 것이었다. 이처럼 인간의 기억은 조작되고 왜곡된다.
<오! 수정>을 보는 또 다른 재미는 홍상수표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영상의 사용으로, 즉흥성을 강조하는 상황과
상징으로 사용되는 화면을 들 수 있다. 수정이 혼자 남산에서 케이블카를 탔을 때 정전으로 케이블카가 정지된다. 매달린 케이블카와 그
안에 있는 수정의 모습은 <강원도의 힘>의 물고기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벌레의 역할을 한다.
해석의 여지를 남기면서 여유를 주는 화면이다. 고잔 호수에서 얼음 속에 있는 뽀뽀껌 종이를 보고 뽀뽀하는 장면은 홍상수 영화의
즉흥성을 보여준다. 장담컨대 그는 껌 종이를 찾아서 넣은 것이 아니라 '그것이 거기에 있으니까' 그렇게 했을 것이다. 후문에
의하면 술 마신 연기를 하는 인물들은 진짜로 술을 마셔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술 취한 배우들의 대사가 그렇게 '리얼'할 수
없다. 혀 꼬이는 정보석의 대사는 가히 압권이다. 큰 줄기만 잡고 세부사항은 즉흥적으로 갔다는 말이다. 유연한 구성의 형식과
맞물린 즉흥적 연기의 통제는 과히 홍상수가 대가의 경지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 영화에서 한가지 의문점이 있다면 그것은 결말 부분이다. 수정과 재훈이 우이동의 호텔에서 정사를 치른 후 자신의 짝을
찾았다며 서로 포옹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홍상수 영화의 섹스는 교통이 아니라 불통의 코드이며, 불륜의 현장이었다. 전작의
인물들이 죽은 것 역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이러한 섹스의 결과였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밀고 나가는 감독이,
그래서 흥행과 상관없는 흑백 필름으로 촬영한 감독이 왜 이런 결말을 내렸을까? 물론 다르게 볼 수도 있다. 그들의 기쁨조차 개똥
철학의 한 모습이며, 변덕 심한 인물의 일시적 상태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그래서 홍상수가 그만큼 노련해지고 세련되어졌다고.
그러나 전작들의 결말이나 작품의 탄탄한 구성에 비할 때 <오! 수정>의 결말이 맥없이 끝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건축 설계자 홍상수는 사소한 삶의 파편들이라는 재료로 몇 동의 단조로운 아파트를 지었다. 그러나 그가 지은 아파트의 내부는
서로 다른 인테리어를 하고 있어서, 한 동에 들어갔던 입주자는 다른 동에서 차이점과 동일점을 찾기 위해 어슬렁거려야 한다. 그런
틈을 타서 영리한 설계자는 구석구석에 설치해 둔 여러 개의 장치를 통해 아파트 전체를 돌아보기를 원한다. 당신은 어느 아파트에
살고 있는지, 왜 그 아파트에 살고 있는지, 아파트에서의 생활에 만족하는지 설계자는 진지하게 묻는다. 대답은 관객의 몫이다.
홍상수가 지을 다음 아파트가 기대된다. 부실이 심한 한국이기에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