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수를 제외한 수 중에서 맨 먼저 접하는 상수는 대체로 원의 둘레나 넓이에 대한 상수, 즉, 원주율이다. 수많은 자연현상에서 원주율이 발견되는데, 이에 못지않게 자연현상, 경제현상에서 자주 발견되는 중요한 상수가 바로 자연상수 e다. 이 상수는 특히 미적분과 관련해서 고교 과정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바람에 그 의미를 제대로 알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미적분학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도 반드시 거쳐 가야 할 상수 e를 이번 수학 산책에서 다루고자 한다. 이를 위해 지수 개념을 약간 복습해 보기로 하자. 정수 지수
실수 a가 있을 때, a2, a3, a4, … 이란, a를 2번, 3번, 4번, … 곱한 것을 말한다. 즉, 이다. a1은 a를 한 번 곱한 (응? 한 번 곱하다니? 곱하려면 두 개는 있어야 하지 않나?) a라고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지수를 하나 올리는 것은 a를 곱하는 과정이므로, 지수를 하나 내리는 것은 a로 나눈 것으로 정의하는 게 합리적이다! 따라서 a0은 a1=a를 a로 나눈 수인 1이어야 한다. 단, a가 0이면 0 나누기 0이므로 정의할 수 없으므로, 00은 정의할 수 없다(참고: 0의 0제곱은?). 같은 논리로 a-1은 a0=1을 a로 나눈 1/a이어야 하고, a-2는 a-1=1/a을 a로 나눈 1/a2, … 이어야 합리적이다. 따라서 음의 지수는 다음처럼 정의한다. 지수법칙과 유리수 지수 0과 음의 정수에 대해 지수를 정의하면 다음 지수법칙이 성립한다. 왼쪽 변을 보면 지수끼리 더하고, 빼고, 곱하는 일은 자유로워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럼 다음과 같이 지수를 나눈 형태는 무엇일까? 예를 들어 a를 2/3 번 곱한다는 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는 얘기다. 수학자들은 이런 것들을 매끄럽게 잘 정의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나눗셈이 곱셈의 역이므로, 곱셈에 대한 지수법칙을 통해 지수의 나눗셈을 다루면 될 것이다. 곱셈에 대한 지수법칙으로부터 다음이 되어야 자연스럽다. 따라서, an/m은 m 제곱하여 an인 수여야 합당할 것이다. 그런 수가 하나밖에 없다면 좋겠는데, 불행히도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a와 an/m이 모두 양수여야 한다는 조건을 단다면 한 개다. x가 양수일 때 m 제곱하여 x가 되는 양수를 라 쓰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정의하는 게 가장 안성맞춤이다. 예를 들어 a1/2은 , 즉, 이다.
실수 지수는? 그럼, 와 같은 것은 어떻게 계산할까? ‘2를 번 곱한 것’이라니 벌써 울컥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의 근삿값이 1.414213…인데, 1, 1.4, 1.41, 1.414, 1.4142, …는 각각 유리수다. 따라서 다음은 모두 계산할 수 있는 값들이다. 실제로 계산하면 다음과 같다. 이 수열은 계속 커지고, 22=4보다 클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므로 어딘가로 수렴함을 알 수 있다. 그 수렴값을 라 정의하면 된다. 실제로 참값은 2.66514414…이다. 이런 식으로 유리수 지수의 극한으로 실수 지수 역시 모두 정의할 수 있다. 이쯤에서 복소수 지수를 정의하자고 욕심을 낼 법도 한데, 서두르면 체한다. 복소수 지수는 다른 글에서 알아보기로 하고, 그에 앞서 지수를 다룰 때 가장 중요한 상수 e를 도입하기로 하자. 10의 제곱근의 제곱근의 제곱근의…
양수 a의 양의 제곱근 를 구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예전 수학산책에서도 살펴본 바 있다. 이런 방법을 이용해서, 10의 제곱근, 10의 제곱근의 제곱근, 10의 제곱근의 제곱근의 제곱근, … 등을 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지면 관계상 16줄만 적었는데, 헨리 브리그스(Henry Briggs, 1561-1630)는 오직 종이와 펜만을 써서 54줄 계산했다는 것을 언급해야겠다. (필자는 당연히(?) 계산기를 썼다.) 브리그스가 이와 같은 계산을 한 이유는 다른 글에서 얘기할 주제이므로 일단은 넘어가기로 하는데, 독자 여러분은 오른쪽에 나타나는 숫자를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패턴을 찾아보길 바란다. 흔히 수학은 깔끔하고 엄밀한 논리의 대명사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런 단순무식에 가까운 계산을 통해 패턴을 발견하는 학문이기도 하다. 패턴으로부터 발견한 자연 상수 e
패턴을 찾았는가? 왼쪽 변에서 지수를 반으로 나눠 갈수록, 오른쪽 변에서 소수점 이하의 숫자는 거의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을 눈치챘기를 바란다. 즉, 지수와 소수점 이하의 숫자가 갈수록 비례한다는 얘긴데, 비례 상수는 얼마일까? 이므로 2.302…쯤의 값일 것 같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다음 식으로 압축할 수 있다. 다소 비수학적인 표현이지만, 는 t가 0근처의 값일 때 양변이 가깝다는 뜻으로 썼다. 과거 호도법을 도입하면서 비례 상수를 조절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비례 상수를 1로 만들어 보자. t 대신 t/2.302…를 대입하면 다음과 같다.
e=101/2.302…이라 두어, 왠지 지저분하고 정체 모를 숫자 2.302…을 싹 감춰버리면, 다음과 같다. 즉, e는 at 1+t 이도록 하는 상수 a를 말한다. 혹은, 양변의 1/t 제곱을 구하여 다음 식을 얻는다. 요즘의 표현인 다음 정의는 이로부터 나온 것이다. 지수 함수의 다른 표현 몇 번의 제곱근 계산만으로 얻은 식 et 1+t가 겉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 같다. 먼저, 위 식은 t가 0에 가까울수록 정확하지만, t가 큰 수일 때는 전혀 도움을 못 주는 식이라는 생각이 들 법하다. 하지만 지수법칙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활용해 보자. t가 큰 수일 경우, 아주 큰 수 n으로 나누어 t/n을 생각하자. 그러면 n이 클수록 t/n은 0에 가까운 수다. 따라서 t/n에 대해서
이 성립한다. 이제 양변을 n 제곱하면, 다음 식을 얻는다. t가 큰 수일 때도 et를 표현하는 식이 생긴 것이다! 물론 이런 과정이 정당하다는 것은 증명해 줘야 한다. (1) 식에서 (2) 식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미심쩍기 때문이다. (1) 식에서 작기는 하지만 양 변 사이에 오차가 존재한다. (2) 식으로 넘어가려면 양변을 n제곱해야 하는데, n은 큰 수로 잡았기 때문이다. 작은 오차도 100제곱, 1000제곱, … 하다 보면 오차가 누적되어 결국 양변의 오차가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수의 성질로부터 사실은 이 과정이 t=1일 때 정당하다는 것만 보여주면 된다. 따라서 n이 큰 수일 때,
임을 보이는 것과 같다. 생각보다는 기교가 필요한 증명인데, 이미 수학자들이 증명해놨기 때문에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따라서 현대적인 표현으로, 다음 등식을 얻는다. 몇 번의 제곱근 계산만으로 얻은 위 식이, 계산 및 수학에서 어떻게 혁명을 일으켰는지는 차차 맛보기로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