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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의 정대만이 말했다. “선생님, 농구가 하고 싶어요.” MBC <위대한 탄생>의 손진영이 말했다.
“선생님이 끌어주셔서 여기까지 왔다고 봅니다.” 김태원은 두 번 탈락한 손진영을 두 번 구제했고, 자신의 멘티로 선택했다.
김태원은 실력이 좋은 출연자 대신 “운명이 아니라 업보”라고까지한 손진영과의 인연을 믿었고, 그의 ‘선생님’이 됐다. 냉정하고
공정한 심사가 리얼리티 쇼의 가장 중요한 명분이라면, 김태원은 쇼의 룰을 어겼다.
그러나, 김태원이다. KBS
<해피선데이>의 ‘남자의 자격’에서 모든 노래를 동요처럼 불러 고민이라는 고교생에게 “독특한 건 이상한 게 아니”라며
창법을 칭찬한 김태원이다. 이름 때문에 놀림 받는 학생에게 “니 이름이 빛나도록 노력하면 돼”라고 격려하던 김태원이다.
부끄러워하면 얼굴이 붉어지는 게 고민이라던 학생에게 김태원은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건 같아. 어떤 사람은 숨길 줄 알고 어떤
사람은 모를 뿐이야. 누가 정상이고 누가 이상한 건지 다시 생각해 보는 거야”라고 말했다. 김태원도 그랬다. ‘남자의 자격’을
통해 그는 자신의 삶을 공개했다. 오랜 시간의 방황은 건강을 해쳤다. 밤에 기타치고 낮에는 자느라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도 않았다.
그룹 부활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는 허약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국민 할매’가 됐다. 그러나, 공부 대신 기타를 선택하면서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 오랜 방황이 있었기에 ‘사랑할수록’이 나왔다. 그의 노래는 상처와 방황을 딛고 기어이 음악을
계속하는 사람의 인생이 낳은 결과물이다. 그는 어떤 노래도, 어떤 사람도 모두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안다.
김태원이기에 가능한 어떤 선택들
“제
가 선택하겠습니다.” <위대한 탄생>에서 김태원은 백청강을 멘티로 선택했다. 심사위원들 중 누구도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한 템포 늦게, 스튜디오의 정적을 깨며 손을 든 김태원의 행동은 심사가 아니라 백청강을 위한 구제처럼 보였다.
불공정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태원이다. 그는 대마초를 끊다 폭식 때문에 체중이 90kg 이상 나갔었다. 절망에 빠져
있던 그에게 매일 찾아와 음악을 하자던 보컬리스트 김재기는 ‘사랑할수록’을 발표하기 전 사고로 죽었다. 김태원은 벗어날 수 없는
절망을 안다. <위대한 탄생>의 출연자들은 모두 절박하다. 그러나 미스코리아 대회에도 나간 권리세와 중국에 아픈
어머니를 두고 온 백청강의 절박함은 다르다. 노래를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게 노래밖에 없다. 그에게
필요한 건 심사가 아니라 구원일 것이다.
구원의 기준이 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태원이다. 그의 인생이,
그가 지금 서 있는 자리가 그의 선택을 납득시킨다. 김태원은 쇼의 룰을 어기면서 쇼에서 벌어질 수 없는 기적을 행했다. 경쟁과
실력이 전부인 리얼리티 쇼에서 출연자에게 ‘인생의 기회’를 주는 순간이 일어났다. 그건 <위대한 탄생>에게도 기적이다.
Mnet <슈퍼스타 K>는 허각이 있는 한편 존 박도 있고, 강승윤도 있었다. <슈퍼스타 K>는 출연자들의
다양한 캐릭터를 부각시키고,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반면 <위대한 탄생>은 ‘위대한 캠프’에서조차 출연자들의 연습
과정은 거의 생략한다. 존 박과 강승윤은 나올 수 없다. 대신 이태권, 손진영, 백청강처럼 ‘요즘 세상에 가수로 데뷔하기 어려운’
출연자들은 무대에 오르면 더욱 눈에 띈다. 김태원이 뻗은 손길은 그들을 ‘외인구단’으로 캐릭터화 시켰고, 쇼를 끌고 갈 드라마가
됐다. 멘토의 음악관이 캐릭터가 되고, 그들의 캐릭터가 멘티들의 캐릭터까지 만든다.
<위대한 탄생>이 살아남는 법은 멘토에 있다
김
태원이 이태권에게 예능 활동의 중요성을 말하자 신승훈은 그 의견에 반대했다. 부활의 노래는 ‘남자의 자격’ 이후 재발견됐다.
김태원에게 노래는 때론 한 사람의 인생 자체에서 나온다. 하지만 신승훈은 노래만으로 한국 최고의 가수가 됐다. 김태원은
‘외인구단’을 만들었고, 다른 멘토는 보다 우승 가능성이 높은 출연자들을 모을 수도 있다. <슈퍼스타 K>는 기존의
기획사에서 캐스팅되지 않은 가수를 요즘 가요계의 기준에 맞춰 변화시켰다. 반면 <위대한 탄생>은 멘토가 생각하는
음악관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김태원은 손진영으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신승훈은 셰인의
단점들을 극복시킬 수 있을까. 이제야, <위대한 탄생>은 <슈퍼스타 K>가 못 가진 무언가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태원의 기적이 <위대한 탄생>까지 구원할지는 미지수다. <위대한 탄생>은
권리세의 등장부터 그를 따라가며 주목했다. 그는 <위대한 탄생>의 거의 유일한 엘리트였고, 제작진이 유일하게 캐릭터와
드라마를 만들어주려 했던 출연자다. 하지만 권리세는 아직 <슈퍼스타 K>의 존 박이 아니다. 권리세의 두 번의 탈락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이태권의 도약과 손진영의 구원이 화제다. <위대한 탄생>이 권리세에게 어떤 드라마나 존 박과
허각처럼 캐릭터의 관계도 부여하지 못한 결과다. <위대한 탄생>은 <슈퍼스타 K>를 따라가면서도
<슈퍼스타 K>의 핵심은 놓쳤다. <슈퍼스타 K>에 어지간한 가수지망생들이 도전하지 않았다면, 또는 김태원이
아니었다면 손진영은 주목조차 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멘토들의 활약과 별개로 <위대한 탄생>은 여전히 출연자의 합격 때
마다 똑같은 BGM이 반복되고, 예고편에서 오디션 결과를 알려주며, 심지어는 자신들이 어떤 쇼를 만드는지도 모르는 것 같은
연출을 보여준다. 과연 제작진은 김태원의 구원이 가진 뜻을 알고 있을까. 모른다면, 그 때는 ‘멘토’에게 맡겨라. 김태원의 삶은,
신승훈의 업적은 그들의 연출로는 따라갈 수 없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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