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그러나 믿기지 않는 죽음이었다. 4인조 그룹 울랄라세션의 리더 임윤택이 위암으로 33년의 짧은 생을 접었다. 드라마틱한 삶을 마감하기 전 100일 동안 고인의 행적을 좆았다. 실낱같은 희망과 꼭 그만큼의 절망이 뒤섞인 시간들. 그러나 어둠보다는 빛을 보고 싶었던 그의 기록들.
"남자 나이 마흔이 가장 멋있는 거 같아요. 어서 마흔이 되고 싶어요." 생전 임윤택은 마흔을 꿈꿨다. 어떤 이는 그의 말을 들으며 헛웃음을 지었을 테고, 또 다른 이는 안쓰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기자는, 기적이라도 일어나 그가 마흔을 넘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팬이어서가 아니었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임윤택은 누구보다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그 고통스럽다는 항암치료도 스무 차례 이상 받았다. 지난 2월 11일, 말기 위암으로 고통받던 임윤택이 영면했다.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는 울랄라세션 멤버들의 표정에서 무한한 슬픔이 배어 나왔다. 그의 아내 이혜림씨는 1년 전보다 훨씬 수척해 몰라볼 정도였다. 가족과 지인 역시 임윤택과 함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11월 3일, 1년 전을 추억하다
역동적이고 유쾌한, 기분 좋은 엉뚱함. 울랄라세션은 그들만의 기운을 무대 위에서 내뿜었다.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퍼포먼스에 열광하는 사람들. 그가 그동안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었다. 15년간의 무명 생활을 뒤로하고 2011년 11월 11일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시즌3' 파이널 무대에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고, 그는 슈퍼스타가 됐다.
최고의 행복감을 맛보던 그 시기에 그의 육체는 가장 괴로웠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이 암에서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그가 오디션에 참가한 계기부터 병과 연결돼 있다. 리더인 임윤택이 진단을 받은 후, 멤버들은 임윤택 몰래 미사리 무대에 올랐다. 무명인 그들이 치료비를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내 임윤택도 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나를 믿고 따라와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 바로 '슈퍼스타K 시즌3'의 공고를 보게 됐다. TOP 10에 들어가면 세상은 우리를 주목하겠지. … 무슨 일이 생겨 내가 없더라도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해야만 했다"(임윤택의 에세이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아니라고 하지 말고」 중)고 했다. 자신이 없는 곳에서도 멤버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수술 후 6일 만에, 배 옆쪽에 피주머니를 찬 채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진통제를 삼켰다. 모르핀 주사까지 동원됐다. 그만큼 그는 치열했다. 죽을힘을 다했다. 결과는 1등. 그에겐 또 무대가 주어졌다. 오늘의 무대도 그렇게 얻어낸 것이다. 2012년 11월 3일 그는 트위터를 통해 1년 전을 추억했다. '살면서 가장 잠을 줄였던 작년 슈스케3 생방송 시절,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 하나 저장!' 아마, 이날도 임윤택은 진통제를 삼켰을 테다. 그렇게, 11월에만 여덟 번의 무대에 올랐다.
11월 6일, 설레는 아빠 임윤택
'내 분신 리틀 단장 임리단~~^^ 녀석에게 내가 주는 첫 선물~~♥ 아빠가 줄 수 있는 모든 건 다 줄게. 제발… 밤에 울지 좀 마ㅠㅠ 아빠 잠 좀 자자… ㅠ.ㅠ'
그의 트위터에는 딸에 대한 사랑과 초보 아빠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의 딸, 리단(리틀 단장의 줄임말. 임윤택은 울랄라세션의 단장으로 불렸다)이는 2012년 10월 세상과 첫 인사를 나눴다. 리단이는 작년 8월 결혼식을 올린 임윤택 부부의 믿음과 사랑의 결실이었다. 그는 한 방송에서 "초음파검사 결과 딸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제 코 닮으면 큰일 나요. 눈만 제 눈을 닮았으면 좋겠어요"라며 잔뜩 부푼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축복받아야 할 일, 하지만 임윤택에는 이조차 녹록지 않았다. 위암 4기 환자가 아빠가 된다.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는 "저도 제가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 역시 미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힘들면 기댈 곳을 찾게 됐습니다. 아내와 아이에게 큰 힘을 받고 있고, 특히 아이가 생기면서 살아야겠다는 목표와 이유가 확실해졌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딸이 세상을 살고 있는 한, 자신은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라고 솔직한 심경을 고백했다.
11월 23일, 현재를 살다
'그냥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정말 늘 감사합니다~ 무대에 설 수 있음에… 노래하고 춤출 수 있음에… 숨 쉴 수 있음에…'
시한부 암 환자. 사람들은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도 오늘을 살아갈 자격이 있다. 아니, 더 소중한 시간이기에 보다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임윤택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과거를 후회하지 않았고, 미래만 보지 않았다. 그는 하루하루, 행복을 위해 살았다.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주변의 소개로 세 살 연하의 이혜림씨를 만났다. 암 환자가 무슨 연애를 하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임윤택은 아니다. 그는 이기적이고, 현실적이고, 현명했다. 허무하게 죽는 날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 용기가 '음악보다 중요한 사람'을 만나게 해주었다. 그들의 첫 만남 당시 임윤택은 슈퍼스타가 아니었다. 숱한 오디션 지원자 중 한 명이자,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한 치 앞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의 남자일 뿐. 그런 임윤택에게 그의 아내는 늘 진심 어린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었다.
그는 결혼식 전 기자회견에서 신부에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에, 드라마보다는 시사나 사회적 이슈 같은 걸 좋아하고, 책도 많이 보는 친구죠. 나이는 저보다 어려도 아주 현명한 친구예요. 조언도 많이 해주고 제가 잘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지적도 잘 해주고요"라며 신부에 대한 사랑을 전했다. 그녀의 믿음과 사랑 속에서 울랄라세션은 '슈퍼스타K 시즌3' 오디션 일정을 소화했다. 그동안 임윤택의 건강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의사도 놀랄 정도의 호전이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콘서트
'비가 오는 날엔 난 항상 널 그리워해. 언젠간 널 다시 만나는 그날을 기다리며. 비 내린 하늘은 왜 그리 날 슬프게 해. 흩어진 내 눈물로 널 잊고 싶은데.'
허스키하고 애절한 음성이 가슴에 와 닿는 '서쪽하늘'이 울려 퍼진다. 이날 열린 울랄라세션의 콘서트는 임윤택의 마지막 콘서트가 됐다. 그가 '서쪽하늘'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2011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촌의 한 대학병원 암센터, 그가 처음으로 위암 4기라는 말을 들었던 장소에서 주치의는 배우 장진영에 대해 말했다. 그처럼 위암을 앓았지만 끝까지 아름답게 살다 간 배우. 임윤택은 이때 많은 것을 직감했을 터다. 의사는 완치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치료라고만 했다. 위는 다른 장기보다 까다롭다. 아직 혁신적인 항암제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평균 수명은 1년 반에 불과하다.
그때부터일까. 임윤택은 배우 장진영의 유작 '청연'의 OST에 수록된 '서쪽하늘'을 자주 불렀다. 고 장진영도 좋아했던 노래. 이 노래를 읊조리며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는 얼마나 많이, 이 노래를 불렀을까.
1월 2일, 새로운 항암제, 또 다른 고통
'앗~~!!!!!!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여러분들이 언제나 웃을 수 있게 즐거운 음악, 무대 보여드리고 들려드릴게요. 벌써부터 잡힌 방송들이 완전 여러분들이 즐길 수 있는 방송이더라고요ㅋㅋ 암튼 올해는 조금 기대해주세요ㅋ 아주 조금^^♥'
이즈음, 그는 항암치료 방법을 바꿨다.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5월 울랄라세션 앨범을 발표하면서 "약을 쓰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한 가지만 쓰다보면 몸에 내성이 생겨서 더 이상 쓰지 못하거든요"라며 "이제 나한테는 몇 가지 약이 안 남았을 겁니다. 그걸 다 쓰고 나면 나에게 쓸 약은 없고요"라는 말을 했었다. 몇 개 남지 않은 선택지를 또 한 번 사용했다. 뭐 바꿀 수도 있는 문제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말기 암 환자에게 항암제는 목숨이 달린 문제다. 체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몸에 맞지 않는 항암제를 사용하다 부작용으로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 항암제는 암세포를 공격하는 동시에 정상 세포에도 영향을 끼친다. 특히 그는 20차 치료를 받던 도중 부작용으로 졸도한 경험이 있다. 21차 때도 같은 쇼크가 왔다. 그때부터 항상 당당했던 그도 항암치료를 두려워했다. 전에는 부모님에게 집에 들어가시라고 말하던 그가 그 이후부터는 불안하다며 가족과 함께 있기 시작했다. 그런 예민하고 힘든 시기에도 그는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앨범과 방송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1월 4일, 마지막 트위터
'리단 맘이 갑작스레 1월 14일이 무슨 날이냐 묻기에 망설임 없이 리단이 백일이라고 대답하니 조금은 놀란 기색이네요. 대체 날 뭘로 보고. 난 자상하고 꼼꼼한 아빠거늘. 벌써 백일 식사 모임을 할 곳도 세 군데 정도로 간추려놓았다고요!'
리더 임윤택은 무뚝뚝했지만 아빠 임윤택은 자상했다.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늘 아내와 딸을 보살폈다. 당시 임윤택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의 지인은 "사실 그때는 힘든 시기였다. 살이 너무 많이 빠지면서 체력이 받쳐주지 못했다"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그는 딸의 백일을 치러주기 위해 살뜰히 챙겼고, 사무실을 오가며 오는 3월로 예정됐던 음반 준비도 병행했다. 그는 팀의 리더의 자리, 아빠의 자리를 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섣부른 동정을 거부했고,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지 않았다. 여전히 씩씩하고 밝았다.
1월 15일, 마지막 공식 활동
연말 공연 이후 임윤택은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제8회 2013 아시아모델상 시상식에서 울랄라세션 멤버들과 함께 인기가수상을 받았다. 부쩍 야윈 그의 모습으로 인해 건강 악화설이 흘러나왔다. 소속사에서는 4월경 새 앨범 발매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했고, 팬들은 그의 회복을 기원했다. 그 누구도 그 무대가 마지막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2월 4일, 신혼여행을 꿈꾸다
컨디션 회복을 위해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 울랄라세션의 소속사 이유진 대표는 "약간 체력에 무리가 와서 항암치료를 다시 받고 준비를 해서 컨디션을 끌어 올린 후, 신혼여행을 가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멀리는 못 가더라도 일본, 동남아 쪽으로 신혼여행을 가려고 했던 것이다. 자신을 간호하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주고 싶었을 테다. 자신의 몸이 극도로 약해져 있는 상태에서도 그는 아내를 위해, 무엇인가 해줄 것을 찾았다. 오히려 수척해질수록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필사적으로 찾았을 것이다. 임윤택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2월 11일, 마지막을 예감하다
'울지 마라'
갑작스럽게 상태가 악화됐다. 이후 잠깐 회복세를 보였다. 마지막을 예감했을까. 그는 흐릿한 의식 속에서도 멤버들의 건강을 걱정했다. "승일이 목 디스크 괜찮냐. 명훈이 허리 괜찮냐. 아프지 마라. 이 바보를 영원히 기억해줘라." 어눌하고 뭉개진 소리로 평소엔 잘 표현하지 못했던 따스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마지막을 예감한 듯 아내를 불렀다. 아내를 꼭 껴안은 채 "울지 마라"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영면했다. 2013년 2월 11일, 오후 8시 40분이었다.
남겨진 이들
"이젠 기쁜 마음으로 보내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준 사람. 이토록 멋진 남자의 아내인 나는 지금 이 순간도 참 행복합니다. 우리 다시 만날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내 이혜림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남기며 남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표현했다. 가족이 겪어야 하는 아픔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겠는가. 세상 사람들은 남은 가족을 보며 임윤택을 탓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행복했다"라고 말한다.
혹자는 악성 댓글이 그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한다. '슈퍼스타K 시즌3' 출전 당시부터 결혼과 임신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그는 가짜 투병설을 운운하는 이들에게 시달렸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개인적으로 악플 써주시는 분들 울랄라 홈피 통해 제게 쪽지 보내주시면 제 개인 사비로 콘서트 티켓 끊어드릴게요. 직접 공연 보시고 나서도 정이 안 붙으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정말 노력하는구나, 라는 거도 보여드리고 싶어서요"라고 답하던 사람이었다.
임윤택은 가족뿐 아니라 대중을 행복하게 해준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그가 투병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삶에 대한 자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그는 누구보다 삶을 사랑했고 암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삶을 아름답게 가꿨다. 그의 인생은 짧았지만 사람들에게 준 용기와 영감은 길고 깊었다. 임윤택은 아티스트였으니 그것이 그의 소임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럼에도, 뼈와 피부만 남아 작아진 그가 신나게 웃는 모습을 생각하면 또르르, 눈물이 떨어진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박은혜(프리랜서)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사진 제공 / 안하진, 임윤택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