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계의 희망은 모든 활동이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뤄지는 작고 평화롭고 협력적인 마을에 있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의 책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2013년, ‘콘크리트 디스토피아’ 서울 곳곳에서는 ‘마을공동체 만들기’가 한창입니다. 함께 '집밥'을 먹고 책을 읽고 텃밭을 가꾸는 것부터, 아이를 같이 키우고 일자리를 나누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까지. 반세기 전 간디의 정신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양한 마을만들기 사례를 통해 마을이 왜 희망인지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
▲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정릉3동 정릉생명평화마을에 어둠이 내리자, 가로등이 어두운 골목길을 밝혀주고 있다. 정릉생명평화마을은 홍대 앞을 기반으로 거주 및 활동하던 젊은 예술가들이 정릉의 임대료가 싼 빈집을 얻어 거주 및 작업실로 사용하며 사회적기업가 육성 사업을 벌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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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정릉3동 정릉생명평화마을에 위치한 작은 절 '자은정사'에서 '원만보살' 한은숙씨가 정상문씨, 김국희씨와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생기복덕 표를 보며 신년 운세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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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희야, 제주도 갔다가 언제왔노.""상무이 니는 아(애)가 옷이 와 그렇노. 옷 좀 제대로 입어봐."
김국희(30)씨와 정상문(32)씨가 '자은정사'에 들어서자, '원만보살' 한은숙(69)씨의 살가운 잔소리가 시작된다. 한씨의 저녁식사 초대에 대한 답례로 국희씨와 상문씨는 동네슈퍼에서 계란 한 판과 호빵 한 봉지를 사왔다. 한씨는 "계란 떨어진 것 어떻게 알았냐"며 계란말이를 준비한다. 이날 주 메뉴는 김치찌개.
소설을 쓰는 국희씨, 영화와 음악을 하는 상문씨 그리고 한은숙씨는 '동네 친구'다. 국희씨와 상문씨는 한씨를 "보살님"이라고 부른다. 한씨는 정릉3동 '정릉골'에서 40여 년을 살았다. 작은 절을 짓고 신을 모신 지는 20여 년 정도 됐단다. 북한산의 정기를 받은 이곳 마을에는 유난히 절이나 굿당이 많다.
현재 정릉에는 상문씨와 국희씨 같은 청년 20여 명이 살고 있다. 주로 DJ 등 음악하는 이들이 많다. 밴드 '윈디시티'도 이곳에 살고 있다(윈디시티의 노래 '모십니다'에는 '정릉 버전'이 따로있다). 이들 공동체의 이름은 '정릉생명평화마을'. 마을 페이스북에는 다음과 같은 소개 글이 적혀있다.
'지구별과 정릉에 살고 있는 다양한 생명들이 평화로운 호흡을 나누는 마을입니다^^'
청년예술가들과 69세 '보살', 친구가 되다
▲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정릉3동 정릉생명평화마을 낮은 지붕 위에 하얀 눈이 쌓여있다. 오래된 마을에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연탄으로 겨울을 나는 집도 있지만 마을주민들과 젊은 예술가들은 마을의 자립 순환 경제를 만들기 위해 게스트하우스와 공동텃밭, 공동작업장을 운영하며 마을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뒤로 높게 솟은 아파트 단지가 병풍처럼 늘어서져 있지만 정릉평화마을은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마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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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릉생명평화마을을 처음 기획한 정상문씨가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정릉3동에 위치한 작은 절 '자은정사'에서 '원만보살' 한은숙씨로부터 저녁 식사 초대를 받자, 가게에서 구입한 달걀 한판을 선물로 전달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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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어?"
8일 북한산을 뒤로 하고 있는 '달동네' 정릉3동을 찾았을 때의 첫 인상이다. 높은 고도에 가파른 경사, 한 번 길을 잘못 들면 골목길은 순식간에 미로가 된다. 마을 곳곳에 보이는 연탄이 생경하다. 얼음이 녹지 않은 골목을 걷자니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럽다.
하지만 연고도 없는 청년들에게 "여기서 살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 정도로 마을의 경관은 아름다웠다. 조금만 고개를 들어도 볼 수 있는 탁 트인 파란 하늘, 슬레이트 지붕 위에 소복이 쌓인 하얀 눈. 봄이면 어디서든 꽃과 나무를 볼 수 있고, 여름이면 마을 아래 개울가는 '야외수영장'이 된다. 가을이면 인심 좋은 감이 주렁주렁 열린다.
5년 전 상문씨가 지인의 소개로 마을에 들어온 이후, 그처럼 예술을 하는 친구들이 하나, 둘 정릉을 찾기 시작했다. 한은숙씨와의 만남도 그렇게 시작됐다.
"예전에 살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동네 높은 지대에 어르신들 앉으시라고 평상을 만들어서 갖다놓으려고 하는데 보살님이 앞에 계셨던 거예요. 그 친구가 보살님한테 '방 나온 거 있냐'고 물어봤는데, 보살님이 옆집을 소개시켜주셨어요. 그 이후로 그 집에만 3, 4명이 돌아가면서 살고 있어요."
상문씨는 한씨가 이곳 마을청년들의 "어머니 같은 분"이라고 귀띔한다. 이날도 한씨는 누구네 집 수도가 동파됐다고 하던데 괜찮은지, 아픈 친구는 잘 있는지 챙겼다. 청년들도 스스럼없이 한씨의 집에 들러 함께 밥을 먹고, '번개모임'에 한씨를 초대한다. 세대를 뛰어넘은 '우정'의 비결을 묻자 한씨는 이렇게 답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그 사람들 세계가 있고 나는 젊은 애들이랑 잘 통하니까. 나는 나이만 먹었지 동심이 있는 사람이야(웃음)."
방치된 마을의 빈집을 예술가들 작업실과 주거공간으로
▲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정릉3동 정릉생명평화마을 내 공동주거 및 공동작업장으로 운영되는 '타일집'에서 상영회가 열리자, 집주인 이혜진씨가 영상물을 보러온 마을 청년과 주민들에게 빵을 대접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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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정릉3동 정릉생명평화마을 내 공동주거 및 공동작업장으로 운영되는 '타일집'에서 마을공동체를 기획하며 음악작업을 하고 있는 정상문씨가 DJ 안태열씨와 함께 음악 연습을 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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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이 너무 좋아서", 몇 년간 '마을살이'를 하던 상문씨는 마을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고민하게 된다.
"마을에 친구들이 점점 모이는데 다들 생계를 위해서 홍대나 멀리 일하러 다니는 거예요.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도 친한 사람들끼리만 교류하게 되고. 그래서 여기 어르신들이 많은데 이 분들하고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마을 아이들하고도 뭔가 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우리의 에너지를 마을을 위해 쓰면서 생계도 되고 주민들도 좋은 것이 뭐가 있을까, 하다가 사회적 기업 형태를 생각하게 됐어요."
지난해 5월 정릉생명평화마을은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오랜 시간 재개발 예정지역으로 묶여있어 방치된 마을의 빈집을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주거공간으로 쓸 수 있도록 임대하거나, 마을형 게스트 하우스로 활용하는 것이 주요사업이다('정릉골' 지역은 지난해 8월 주택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예술가 공동작업장 '타일집'이 대표적인 예다. 마을의 빈집을 빌려 3인이 살 수 있는 레지던스로 개조했다. '타일집'이라는 이름은 건물 외벽에 색색의 타일이 붙어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마을 페이스북에는 수시로 빈집 관련 정보가 올라온다. 외국인 여행객들도 종종 이곳 마을에 묵는다.
벼룩시장과 문화공연이 어우러진 마을축제 '영등포 달시장' 기획단으로 활동했던 국희씨는 예전부터 마을공동체 만들기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도시와 시골을 결합한 '도시골 프로젝트'의 연구원이기도 하다. '도시골'이라는 이름은 국희씨가 만들었다.
"사람들이 개인의 사적인 삶을 지키려고 하다보니까 외롭고 쓸쓸해졌잖아요. '다시 공동체로 돌아가자'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옛날처럼 옆집에 숟가락까지 다 알고 그건 굉장히 불편한 공동체예요. 사적인 부분을 지키면서 공동체에 살짝 걸친 삶, 도시와 시골의 어메니티(amenity, 쾌적함·기쁨)가 결합된 형태. 그게 제가 생각하는 도시골적인 삶이에요."
국희씨는 현재 서울 정릉마을과 제주도 월평마을을 오가며 '도시골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강남과는 달리 자연이나 시골의 정서가 끼어들 여지가 있거든요." 서울 정릉이 '도시골'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다. 국희씨는 상문씨의 소개로 창문을 열면 마당이 있고, 마당 아래로 북한산 계곡물이 흐르는 집을 구해 살고 있다.
'월평마을 라디오방송 DJ'로 유명한 국희씨는 제주에서도 마을주민들과 함께 빈집을 활용한 게스트하우스 사업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마을 협동조합, 로컬푸드 레스토랑 등을 준비 중이다.
달동네에서 겨울나기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상문씨는 "이번이 다섯 번째 겨울인데 아무래도 집들이 오래됐고, 도시가스가 안 들어오는 곳도 있다 보니 추운 게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올해 유난히 떨어진 기온 탓에 청년들이 동파 수리에 쓴 돈만 100만 원이 넘는단다. 이날 상문씨는 국희씨에게 "중고 해빙기를 하나 사자"고 제안했다.
상문씨의 월동용품은 연탄. 집에 들어서자 마당에 연탄이 수북이 쌓여있다. 그는 "기름으로 한 달 날 돈이면 연탄으로 한 겨울을 난다"면서 "연탄이 훨씬 저렴하다"고 말했다. '생명평화마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친환경적으로' 겨울을 나기 위해 상문씨는 집 안에도 연탄난로를 직접 설치했다. 때로는 나무를 때기도 한다. 만일을 대비해 방에 일산화탄소 측정기를 뒀다.
늘 동네 어르신과 친구들이 반찬과 밥을 챙겨준다. 그래서 어제는 승열이와 태열이와 약수터에 가서 운동도 하고 약수를 떠와서 보살님과 원진이네와 민욱이네에 나누어 주었다. 보살님댁에는 만두도 드렸는데 오늘 원진이와 민욱이와 반장형네에도 송희네 만두를 맛보여 드리려고 사러 갔더니 보살님이 어제 정릉에서 이 만두 처음 먹어보고 맛있다고 오늘 동네 친구분과 함께 먹고 계셨다. 그래서 함께 만두를 가지고 반장형네로 갔다.^^아~ 배부르다. 정릉은 참 좋다(2012년 3월 16일 상문씨의 '마을일기').
아침에 일어나니 마당에… 두릅을 놓고 가셨다… 봄날의 산타 이웃 아주머님이 다녀가셨구나 상상하며 애틋하고 푸근한 날을 보냈다(2012년 4월 24일 상문씨의 '마을일기').
"전봇대 사이로 보이는 하늘, 이게 보물"
▲ 지난해 10월14일 서울 성북구 정릉3동 정릉천 공원에서 열린 정릉골 마을 잔치에 마을 주민들과 젊은 예술인들이 함께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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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14일 서울 성북구 정릉3동 정릉천 공원에서 열린 정릉골 마을 잔치에서 마을 어르신들이 사물놀이를 펼져보이며 마을 번영을 기원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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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14일 서울 성북구 정릉3동 정릉천 공원에서 열린 정릉골 마을 잔치에 정릉생명평화마을에서 음악작업을 하고 있는 레게밴드 '윈디시티'의 김반장이 마을 주민들을 위해 멋진 공연을 펼쳤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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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릉생명평화마을 공동체를 기획한 정상문씨가 지난해 서울 성북구 정릉3동 마을텃밭에서 주민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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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문씨와 국희씨가 꿈꾸는 '정릉생명평화마을'은 단순한 청년예술가 커뮤니티가 아닌 마을주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마을'이다. 그래서 새롭게 유입된 청년들과 기존 마을 주민들의 융합은 이들에게 늘 숙제다.
지난해 10월, 정릉천에서는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마을잔치'가 열렸다. 상문씨는 "원래 이 마을에서 매년 정월대보름 잔치가 열렸는데 재개발 여파 때문인지 지난해인가부터 없어졌다"면서 "마을잔치에 풍물 등 마을주민들이 즐길 수 있는 요소를 넣었다"고 말했다.
마을 풍물패의 길트기부터 시작해서 개울가 바위를 무대삼아 공연을 하고, 같이 밥을 나눠먹고. 국희씨는 "그렇게 많이 모이실 줄 몰랐다"면서 "마을분들이 밤까지 정릉천에 촘촘히 빙 둘러 앉아서 윈디시티 공연도 하고, 마을분들 노래자랑도 하고"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올해는 잔치를 봄에도 하고, 여름에도 하고, 가을에도 할 것"이라며 눈을 반짝였다.
봄이 오면 다시 시작할 일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마을 골목길 탐방. 지난해 여름과 가을, 국희씨가 가이드가 되어서 마을 골목길 구석구석을 걸었다. 보물찾기도 준비되어 있다.
"'지금부터 보물찾기입니다'하면 사람들이 막 보물을 찾아요. 여기는 이게 보물이에요."
취재진에게 골목길 탐방을 시켜주던 국희씨가 잠시 멈춰서며 말했다.
"전봇대 사이로 보이는 하늘. 그러면 다같이 이걸 올려다봐요. 종이에 '당신의 꿈', '당신의 사랑'이라고 적혀 있을 때도 있어요. 그러면 여기에서 자신의 꿈, 사랑을 이야기하는 거죠."
국희씨는 "마을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나 다른 마을 주민들, 일반인들이 골목길 탐방을 오는데 골목이 꼬불꼬불하니까 중간에 길을 잃어도 다들 좋아한다"고 말했다.
"불편함의 즐거움... 하루하루가 행복해요"
▲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정릉3동 정릉생명평화마을 내 공동주거 및 공동작업장으로 운영되는 '타일집'에서 마을공동체를 기획한 정상문씨와 마을 청년, 주민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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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정릉3동 정릉생명평화마을 내 공동주거 및 공동작업장으로 운영되는 '타일집'에서 마을공동체를 기획한 정상문씨가 정릉마을의 시간과 장소, 사람 이야기를 기록한 영상물을 마을 청년, 주민들과 함께 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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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9시, 정릉생명평화마을 '타일집'에서는 작은 상영회가 하나 열렸다. 상문씨가 만든 마을홍보용 다큐영상(다큐영상 예고편 보러가기)을 함께 보는 자리다. 상문씨는 "5, 6개월 동안 촬영했고 3, 4년 전에 찍은 영상도 있다"고 말했다. 국희씨는 "앞으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안방영화제'를 열 것"이라고 전했다.
타일집에 들어서자, 벽면에 있는 마을이웃 연락처가 눈에 띈다. 상문씨와 친구들이 오랜시간에 걸쳐 만든 '마을이웃 네트워크'다.
털보아저씨, 6번 마을버스 종점 미술작가, 밴드를 준비하는 20대 초반의 마을이웃, 기타를 치며 자동차 판매업 하는 마을이웃, 수도 동파시 비상복구업체, 야채 저렴한 집(2만 원 이상시 배달)
타일집은 마을 청년들에게 사랑방 같은 곳이다.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타일집 거실 연탄난로에 어묵탕을 끓여놓고 파티를 열기도 했다.
상영회에 앞서 타일집 입주자 혜진(34)씨는 따뜻한 홍차를 끓였다. 쥬얼리 디자인을 하는 혜진씨는 지난해 10월 이곳에 들어왔다. 그는 "가족 이외에 모르는 이들과 이렇게 살아보는 건 처음"이라면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까 내가 알고 싶거나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입주자 진(26)씨는 타일집에 들어온 지 한 달 정도 됐다. 명동에서 태국·인도 핸드메이드샵을 운영하면서 음악을 하는 진씨는 정릉에 살게 된 것이 운명같다고 말했다.
"제 고향이 경기도 안성이에요. 정말 시골이에요. 논밭이 펼쳐져있는. 그런데 중학교 때부터 도시에서 살면서 제가 제 자신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산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서울 자체에 정이 없어서 귀농하고 싶었는데, 서울의 시골 같은 정릉을 알게 된 거예요. 살기 불편하긴 하지만 '불편함의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어요. 하루하루가 행복해요."
상영회는 오후 10시가 넘어 시작되었다. 영상에는 상문씨가 찍은 정릉의 사계절이 담겼다. 여름의 정릉이 나오자, 혜진씨와 진씨는 "우와, 예쁘다"를 연발했다. 상문씨의 1인 2역 연기가 등장할 때마다, 타일집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정릉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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