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2010.05.23 00:32
한자 교육에 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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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한자'에 들어서며2) 교육의 順(순)
3) 우리가 깨달으며 지켜나가야할 말
4) 오늘의 한자
['한자'에 들어서며 ]
학당이라고도 하는 서당에 관한 기록은 한국 사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나 삼국시대 고구려에 경당이라는 부락단위의 학교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것이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초기부터 각처에서 성행한 것 즉 서당으로 여겨진다. 고려 서당의 기록은 1124년(인종 2)에 왔던 송나라 사신의 서장관 서긍이 저술한 《고려도경》에 “마을 거리에는 경관과 서두가 두 개, 세 개씩 서로 바라보고 있으며 민간의 미혼자제가 무리를 이루어 선생에게 경서를 배우고, 좀 성장하면 무리 대로 벗을 택하여 사관으로 가서 강습하고 아래로 졸오 ·동치도 역시 향선생에게 배운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에 서당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고려의 서당은 그대로 조선시대에 계승되어 더욱 발전된 민중교육기관으로 신교육이 실시될 때까지 존속해온 가장 보편화된 교육기관이었다. 이 서당은 완전히 사적으로 설립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기본자산이나 인가를 요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흥폐가 자유자재였으며 뜻있는 인사는 누구나 설치할 수 있었다. 서당이라 불리는 사숙이 성립되는 데는 사족 자제들을 자기 집에서 가르치는 경우, 가세가 풍족한 집안에서 독선생을 앉혀놓고 약간명의 이웃 자제들을 무료로 동석시켜 수업하는 경우, 훈장 자신이 교육취미나 소일을 위하여, 또는 이웃이나 친구의 요청으로 학동을 받아 수업하는 경우, 향중의 몇몇 유지 또는 한 마을 전체가 조합하여 훈장을 초빙하여 자제를 교육시키는 경우, 그리고 훈장 자신이 생계를 위하여 자기가 직접 설립하는 경우 등이 있었다.
훈장과 그 가족의 생활비는 학부형이 부담하며 춘추로 곡식을 징수하는 것이 관례였다. 독신인 훈장에게는 의복 ·식사 ·세탁도 주선해주었다. 서당의 인적 구성은 훈장 ·접장 ·학도로 되어 있었다. 학도는 7∼8세에서부터 15∼16세에 이르는 연령층이 중심을 이루었으나 20세 전후의 관자 또는 그 이상의 연령층이 있는 경우도 많았다. 인원수는 3, 4명밖에 없는 소규모의 서당에서부터 몇 십명의 관동들이 혼성되어 있는 대규모에 이르기까지 여러 층이 있었고, 학력 정도도 《천자문》을 배우는 초학에서부터 경서를 배우는 자까지 다양하였다.
규모가 작은 서당에서는 훈장 한 사람이 가르쳤으나 비교적 큰 서당에서는 훈장 혼자 많은 학동을 가르칠 수 없었으므로 학도들 가운데서 나이가 들고 학력이 우위인 자를 접장으로 내세워 그보다 하급과정의 학동들을 가르치게 하였다. ‘접’이란 곧 단체의 뜻으로 같은 서당에서 수업하는 동료를 ‘동접’이라 하고, 이 접의 우두머리 격이 곧 접장이었다. 서당에 입학하는 연령은 일정한 규정은 없었으나 대체로 아동의 나이가 7∼8세 전후가 되면 훈장에게 글을 배우는 것이 통례였다. 입학은 흔히 동짓날을 택하였다
입학하는 날 훈장에게 나아갈 때는 흔히 술 ·닭 등의 예물을 갖추는 것이 하나의 예의였다. 학동이 맨 처음 대하는 책은 《천자문》이나 《유합》이다. 이 책을 통하여 단자에 대한 음훈의 의식을 깨우치고, 이 단자를 붙여 음독하는 법을 배운 다음 《계몽편》이나 《동몽선습》 또는 《격몽요결》 《명심보감》 등을 통하여 초보적인 구두와 문장의 뜻을 해독하는 훈련을 쌓는 한편 책 속의 교훈적인 내용을 터득하게 된다. 다음은 《십팔사략》,《통감》,《소학》 등을 배워 문리가 트이고 견식이 열리면 사서오경을 배우게 된다. 옛날 선비들은 이 단계를 거쳐 향교 또는 사학, 이어서 성균관으로 진학하였다. 서당은 근대식 학제가 시행된 후에도 보통교육의 보조기관으로 유지되다가 쇠퇴하였으나 지금도 산간 벽지에서 서당을 볼 수 있다.
한 국 역사에 나타난 최초의 학교는 37년(고구려 소수림왕 2)에 세워진 관학인 태학이다. 사학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경당도 427년(장수왕 15)의 평양천도 이후 전국 각지에 설치되었다. 신라에서는 682년(신문왕 2)에 국학을 세웠고, 고려에서는 992년(성종 11)경에 국자감을 설치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최고학부인 성균관을 서울에 두었고, 중등학교에 해당하는 4부 학당과 향교를 설치하여 양반 자제들의 교육을 맡게 하였으며, 그 밑에 사립 초등학교인 서당이 있었다. 근대에 이르러 신학문의 교육을 위하여 처음으로 세워진 학교는 1886년(고종 23)의 육영공원이었으며, 갑오개혁 이후 새로운 교육제도가 마련되어 각급 공립학교가 세워졌다. 사학계에서는 선교사들에 의한 배재학당(1885) ·이화학당(1887) 등의 학교 설립에 자극되어 각지에 사립학교가 세워졌다. 한편, 국민교육기관으로서의 초등학교가 성립된 것은 1895년 이후의 일이다.
관련 링크
http://kin.naver.com/browse/db_detail.php?dir_id=1309&docid=172516서 당에 대해서, http://kr.encycl.yahoo.com/final.html?id=89076&from=enc
학 교에 대해서, http://kr.encycl.yahoo.com/final.html?id=185388&from=enc
[교육의 順(순)]
학동이 맨 처음 대하는 책은 《천자문》이나 《유합》이다. 이 책을 통하여 단자에 대한 음훈의 의식을 깨우치고, 이 단자를 붙여 음독하는 법을 배운 다음 《계몽편》이나 《동몽선습》 또는 《격몽요결》 《명심보감》 등을 통하여 초보적인 구두와 문장의 뜻을 해독하는 훈련을 쌓는 한편 책 속의 교훈적인 내용을 터득하게 된다. 다음은 《십팔사략》,《통감》,《소학》 등을 배워 문리가 트이고 견식이 열리면 사서오경을 배우게 된다. 옛날 선비들은 이 단계를 거쳐 향교 또는 사학, 이어서 성균관으로 진학하였다. 서당은 근대식 학제가 시행된 후에도 보통교육의 보조기관으로 유지되다가 쇠퇴하였으나 지금도 산간 벽지에서 서당을 볼 수 있다.천자문, 유합 : 단자에 대한 음훈과 음독하는 법
계몽편, 동몽선습, 격결, 명심보감 : 초보적인 구두와 문장의 뜻을 해독하는 훈련과 책 속의 교훈적인 내용을 터득
십팔사략, 통감, 소학 : 문리가 트이고 견식이 열리면 사서오경을
사서오경
[우리가 깨달으며 지켜나가야할 말]
늦게 시작할 것을 두려워말며 하다가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라.[오늘의 한자]
順
【순】순하
다; 좇다(從); 도리를 따르다; 거스르지 아니하다; 잇다; 이어받다川(내천) + 頁(머리혈)
3획 (총12획) obey; order ジュン·したがう shn
順境(순경)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경우.
順德(순덕) ① 꾸밈 없는 유순한 덕. ② 덕을 좇음.
順理(순리) 도리에 순종함. 순조로운 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