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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년 동안 배우들의 경력을 따라가다 배운 것이 있는데, 신인배우의 개성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엄청난 정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 보는 배우가 눈에 뜨이는 개성을 갖고 있으면 좋지요. 하지만 우리가 무개성적이고 선배들의 짝퉁에 불과해 보이는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대표적인 예로 <여고괴담> 시리즈의 배우들을 들 수 있지요. 오디션이 끝나고 캐스팅이 완료되었을 때, 그들은 다 비슷비슷한 외모의 젊은 아가씨들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왜 전엔 구별을 그렇게 못했는지 이상하게 생각되고, 그들이 배우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면 차이점은 더 뚜렷해지지요.



키라 나이틀리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나이틀리는 짝퉁 역할로 유명해진 배우입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에서 내털리 포트먼이 연기한 아미달라 여왕의 대역 겸 보디가드를 연기했었지요. 이 배우가 캐스팅된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내털리 포트먼과 닮았어요. 아미달라 여왕의 진한 메이크업을 첨가하면 정말 구별하기가 힘듭니다. 아미달라 여왕의 메이크업을 벗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자 또 다른 배우의 이름이 언급되었습니다. 위노나 라이더요. 나이틀리는 정말 위노나 라이더도 닮았어요. 특히 턱과 웃는 모습은요. 심지어 목소리도 어느 정도 닮은 것 같아요. 선배 이름 하나만 언급되어도 불편한데, 이름 두개가 꼬리처럼 따라붙으니 독립하고 싶은 신인배우로서는 영 마땅치 않은 상황이지요.



그런데 지금은? 입장이 확 바뀌었습니다. 세 사람들 중 가장 잘나가고 있지요. 위노나 라이더가 가라앉아가는 커리어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내털리 포트먼이 아직도 어떻게든 어른이 되려고 애를 쓰는 동안, 키라 나이틀리는 영국영화계의 슈퍼스타로 떠올랐습니다. <오만과 편견> <어톤먼트>와 같은 굵직한 출연작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고, <캐리비안의 해적>과 같은 블록버스터 시리즈의 당당한 한축을 담당하기도 했지요. 지금까지 쌓아놓은 필모그래피를 보면 많이 당황스럽습니다. 85년생 배우치고는 너무 묵직해요.



그동안 무엇이 바뀌었던 걸까요? 시간 여유를 두고 지켜보니 나이틀리 고유의 개성이 눈에 들어온 거고 그러다보니 그 사람만의 영역이 만들어진 거죠. 일단 이 사람의 키는 170cm 정도로, 포트먼이나 라이더보다는 크고 영화에서도 더 커 보입니다. 여기에 영국식 ‘포시’한 악센트가 첨가되면 더 어른스럽게 느껴지지요. 거의 산술적인 차이지만 이것만으로 이 사람은 포트먼과 라이더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정통 시대극의 성숙한 영국 여성 주인공요. 그러기엔 너무 마르고 성말라 보인다고요? 빅토리아 시대엔 분명 안 어울리겠군요(그래도 언젠가 그 시대에 도전하겠지만). 하지만 18세기나 20세기 초에는 썩 잘 어울립니다. 게다가 은근히 액션도 돼요. 포트먼이나 라이더보다 특별히 운동 실력이 더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일단 허우대가 그럴싸하니까 그림이 잘 나오는 것이죠.



그런데 나이틀리가 포트먼이나 라이더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 스타로서의 존재감을 반짝였던 적이 있었던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제가 <오만과 편견>과 <어톤먼트> 그리고 최신작 <공작부인: 세기의 스캔들>에서 보여준 나이틀리의 연기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늘 <오만과 편견>의 오스카 후보 지명이 정당했다고 주장한다 해도요. 배우로서 나이틀리의 가장 큰 장점은 주어진 모든 역들을 무리없이 해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동안 익숙해진) 자연인 고유의 개성이 첨가되면 썩 매력적으로 보이기는 하는데, 정작 테크닉이나 매너리즘을 완전히 통제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은 없죠. 나이틀리는 그냥 열심히 하는 배우인 겁니다. 열심히 하고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아서 계속 새롭고 묵직한 역에 도전할 기회를 얻고 그를 통해 성숙해가는 배우죠. 다소 재미없는 기술이지만 스타가 되는 길이 꼭 재미있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주어진 기회를 이용하는 배우를 트집잡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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