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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조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이하 브콜)에 음악적 정체성을 부여해온 윤덕원이 솔로앨범 [흐린길]을 냈다. 이별을 예감한 ‘흐린길’을 비롯해 ‘갈림길’, ‘신기루’, ‘비겁맨’ 등 수록곡들은 이별과 상실에 대해 담담하게 들려준다. 더 클래식의 박용준과 밴드 강산에의 키보드 연주자 고경천이 편곡을 맡고 기타리스트 함춘호, 드러머 신석철 등 국내 최고의 세션들이 함께 해 완성도를 높였다. 무엇보다 이 솔로앨범이 반가운 건, 말 그대로 ‘신인가수’ 윤덕원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곡을 듣다 보니 덕원 씨 목소리가 이렇게 좋았나 싶었다.
목소리 톤이 변한 건 세월의 영향도 있을 거다. 사실, 밴드 때는 보컬 자체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녹음하려면 밤새고 너무 지친 상태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니까. 또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완전히 아마추어라 목소리 내는 훈련도 되어 있지 않았다. 어떤 분들은 브콜 1집이 담고 있는 어떤 청춘의 모습이랄까 그런 것과 잘 맞는, 그런 불안하고 푸릇한 음색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또한 개인적으로는 라디오 게스트로 나가게 되면서 남에게 들려지는 말하기 연습이 된 것 같다. 원래는 혼잣말처럼 말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라디오하면서 상대방에게 또렷하게 들리게 말하는 것이나, 문장을 쓰는 게 단호해진 면이 생겼다. 그런 것들이 보컬 톤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밴드가 아닌 솔로앨범이라서, 오롯이 뮤지션 윤덕원의 욕심을 내보일 수 있었을 것 같다.
욕심이라기보다…노랫말을 만들어서 밴드는 멤버와 같이, 솔로는 편곡작업을 도와주는 선배들과 얘기를 나누며 작업한다는 점까지는 둘 다 같다. 그런데 밴드를 할 때는 세션을 맡고 있는 멤버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생각하고 작업한다. 즉 어떻게 보면 제약을 두고 작업하는 것이라면, 솔로 작업은 뛰어난 편곡으로 완성된 곡을 최고의 연주자들이 연주해 노래를 서포트해주니까 보컬에 더 신경쓸 수 있었다.

얼마 전 진행한 음감회를 보니 예전에 비해 진행이 능숙하더라. 생각해보니 브콜도 벌써 10년째다.
밴드로서 브콜은 엄청난 변화를 거쳤던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대중을 상대로 하고 있다거나 전문적인 음악인이라는 자각이 적었다. “무슨 일 하세요?” 이런 말 들으면 그냥 “음악해요” “인디밴드하는데요” 그랬었고. 그런데 솔로앨범으로 데뷔하면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반쯤은 재미삼아 반쯤은 자기최면 혹은 주문 걸듯이 “신인가수 윤덕원입니다”라고 말한다. 정말 기분이 다르다.

앨범을 듣다 보니 90년대나 2000년대 초반 가요의 자장 같은 게 느껴지던데.
아무래도 들어왔던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난 음악을 폭넓게 찾아듣기보다 딱 평균치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냥 남들 듣는 만큼 들었다. 처음 샀던 음반이 [철이와 미애] 1집이었고 [더 블루] 1집. 친구가 선물로 준 [더 클래식] 1집, 그리고 사촌형 따라 듣게 된 [이오공감]을 좋아했다. 개인적으로는 오태호에게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거 같다. 이승환 씨에게서는 공연이나 MD 제작 등 아이디어를 많이 받았고.

‘강산에’의 고경천 씨가 연주했다는 [신기루]는 아예 대놓고 노래방 연주던데…
그걸 의도한 거 맞다.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으로 뮤직비디오를 찍고 싶다. 그런데 아직 노래방에 음원이 안 올라가서 못하고 있다(웃음).

‘흐린길’은 거의 6분에 육박한다. 그런데 전혀 길다는 느낌을 못 받았다.
나도 이렇게 긴지 몰랐다. 가사가 길지도 않고 두 번 반복이 다다. 내가 좀 만연하게 노래를 만드나 싶기도 했는데, 더 줄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방송은 포기했으니 CD를 좀 많이 사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웃음).

더 클래식 박용준의 편곡이라고 들었는데 작업과정은 어땠나.
처음엔 과연 해주실까 걱정했다. 간소한 반주에 목소리만을 녹음해 보냈는데 흔쾌히 맡아주셨다. 아마도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한 게 아니라 자기 음악을 아는 후배가 수소문해서 부탁드린 걸 좋게 봐주신 게 아닐까 생각한다.

밴드에서 혼자 작업하다가 푸른곰팡이의 함춘호 씨 같은 쟁쟁한 선배들과의 작업은 또 다른 자극이었겠다.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 난 완전 아마추어였다. 회사에 들어가거나 배우거나 한 게 아니라, 진짜 이끼나 곰팡이마냥 자생적으로 시작하지 않았나. 그러다 보니까 부족한 점이 많은데 녹음 현장에서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말 많은 공부가 되었다. 좋은 걸 많이 봐야 좋은 걸 만든다고 하지 않나. 본 것만으로도 수준이 올라갈 때가 있는데, 그런 경험을 하게 해준 특별한 경험이었다.

덕원의 음악은 보편적인 정서를 보편적인 멜로디로 들려주는데, 그게 빤하지 않고 새롭게 들린다. 그런 게 어디서 오나 살펴보면 멜로디와 가사 중에선 가사인 듯 싶은데.
난 기본적으로 과작이고 줄글을 잘 쓰지도 못한다. 논술고사 때도 1,400자를 다 채우지 못해서 1,000자 미만으로 쓰고 나왔다. 그냥 평소 오며가며 느낀 걸 마음속에 잘 보전해놓는 편이다. 짧은 문장 같은 걸 메모장 같은 데 써둔다. 멜로디나 리듬감 같은 게 떠오르면 그것 역시 기억해두고. 따로 메모를 보진 않는다. 그렇게 자연도태를 많이 시키는 편이다. 빠른 시간에 활자화하기보다는 정리되지 않던 것들이 쓰지 않은 상태에서 다듬어지도록 두는 편이다.

신인가수 윤덕원입니다 이미지 2

일찍부터 음악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뮤지션들에 비해 어깨에 힘이 빠진 느낌이랄까, 욕심 없음이랄까, 그런 면이 음악에 드러나는 것 같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건 맞는 말 같다. 굳이 음악이 아니더라도 뭔가 재미있는 콘텐츠가 있었다면 그걸 보여주는 작업을 했을 거 같으니까.

그러니까 음악은 윤덕원이라는 사람이 가진 콘텐츠의 일부라는 말로 들린다.
말하자면 음악은 내가 갖고 있는 방법 중 하나인데… 우연히 그걸 해서 성공한 셈이다. 만약 내가 긴 글을 잘 썼다면 다른 방향의 일을 했겠지. 물론 지금 생각엔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 같지만(웃음). 사실, 아무리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걸 하나의 시, 소설로 완결해내는 건 다른 영역인 거 같다. 나는 음악적 역량에서 보자면 평범한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노래 한 곡을 완성했던 경험이 있었고, 그게 다음을 낳고 또 다음을 낳았던 것 같다.

우연히 들어왔지만 음악이라는 이 흐린길을 계속 걸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나?
시장이 너무 암울해서…(웃음). 그런데 직업이나 일을 선택하는 배경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미일 수도 있고, 부와 권력과 명예가 좋아서일 수도 있고, 생계를 해결하려고, 또는 더 잘하고 싶다는 자아실현일 수도 있다. 그런데 유명해지려고, 돈 때문에, 먹고 살려니까 어쩔 수 없이, 이런 식으로 한 가지에 치우치는 건 재미가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재미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도 위험한 것 같다. 그러다가 재미가 없어지면 어떡 할 거야.

나는 음악을 하고는 있지만 기본기가 약한 뮤지션이다. 그래서 건반악기든 뭐든 지금 뭘 배워도 초보의 입장에서 정말 흥미롭게 할 수 있다. 그런 여지가 많다는 점이 좋다. 또 한편으로는 곡 만들고 노랫말 쓰는 건 나만의 방법론으로 좀 더 잘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내가 모르고 하는 건데 재미있는 있는 게 있고, 내가 잘 알고 잘해서 재미있는 게 있다는 점에서 꽤 괜찮지 않은가.

붕가붕가 레이블의 산파 역할을 했고 스튜디오 브로콜리를 운영하는 등 단지 음악활동만 한 게 아니라 레이블 운영부터 앨범 기획, 매니지먼트, CD 판매까지 음악산업 전반의 경험을 아울러왔다. 그런 경험도 분명 도움이 될 것 같다.
약간 기획자 마인드가 있어서 다 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40대쯤 되면 음악인으로서 완성은 아니어도 틀은 잡히지 않을까 싶다. 나이 먹으면서 점점 나은 음악인이 되고 싶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시작점이 워낙 낮아서….

요즘도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는다고 들었는데, 대체 왜 카세트테이프인가.
새로 산 카세트 데크가 망가져서 최근에는 듣질 못했다. 원래 늘 음악을 듣는 타입도 아니다. 이유는 단순하다. 듣던 거니까. 집에 테이프가 꽤 많이 남아 있다. 최신 음반은 카세트로는 잘 나오지 않지만, 최근 노래는 잘 듣지 않으니 큰 문제 없다.

앞서 음악시장 자체가 암울하다는 얘기를 했다. 브콜의 경우 평균 4만장 가량 팔렸다고 들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음악을 좋아하는 거 같은데 음반시장의 침체의 원인은 뭐라고 보나.
최저임금이 오르지 않으니까. 절대적으로 구매력이 약해졌다. 부동산이 10배 오르는 동안 음반 가격은 제자리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전체 음악시장 규모가 서울의 큰 건물 두 채 값도 안되는 게 현실이다. 음악만의 문제가 아니라 소규모이지만 의미 있게 하는 일들이 모두 자본에 의해 황폐화되고 있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같은, 덤핑 시스템이 음악인들에게 주는 피해도 크지 않나.
개인적으로 스트리밍에는 악감정이 전혀 없다. MP3가 나오고 음원시장이 열리면서 지금과 같이 음악시장이 된 건 자연스런 흐름이고 되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속에서 어떻게든 권리를 찾아주고, 적절한 보상이 가고 재생산이 이뤄져야 한다.

그 러나 종국엔 구매자가 더 많은 가치와 재미를 즐길 수 있게 하는 게 포인트가 아닐까. 삶이 팍팍하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니 취향에 돈을 쓰는 걸 이상하게 보는 세태가 되었다. 어쨌건 중요한 건 구매자에게 더 좋은 가치 있는 콘텐츠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 등의 제도 개선이 함께해야 하고.

원고를 다 쓰고 나서 [흐린길]이 발매 1주일 만에 초도 물량 완판을 달성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김동률, 더 클래식 등 기라성 같은 뮤지션들의 귀환 속에도 또렷하게 존재 가치를 증명한 것이다.

사람들은 정말 좋은 음악을 알아본다. 그 음악을 듣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연다. 그 사실을 새삼 알게 해준 그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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