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함경도에서 피난 온 내 아버지였다. 서울에서 돌아오던 날이면 돼지 한 마리 잡아 작은창자 한없이 버리고는 기껏해야 오십센티, 일미터 정도 되는 큰창자로 손수 순대를 만들어 주시곤 하셨다.
당신은 그 때 돼지 창자를 구할 길이 없어 강원도에 흔한 오징어를 써서 순대를 만들어 파셨다 한다. 그리고는 힘겨운 피난 생활도 끝이 나고 실향민으로의 고통도 슬픔도 모른 채 내게 맛이 나는 순대를 해주셨다.
어릴 적 그 맛을 잊지 못해 가끔 동네 앞 순대 가게를 찾지만은 어찌도 그리도 내 입맛을 못 맞추는지 나는 못난 내 아바이가 한없이 그리울 뿐이다
그리도 귀하고 좋던 내 아버지도 이제는 동네 가게 순대보다 더 간절하지 못한 것이 내 참 한스럽고 한스럽고 한스럽다
당신은 1.4 후퇴 당시 남하하는 국군을 따라 내려왔다가 고향에 가지 못하고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 엄마 만나서 결혼하고 나를 낳으셨단다. 숫기가 없어서 마을 사람 외에는 아는 체도 못하는 우리 아바이. 언제나 다시 볼까 그립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우리 아바이 생각나게 하는 순대가 있어 한 육십프로는 그리워도 잘 참고 산다 하겠다.
그 옛날 갯배 운치만은 못하여도 내 아들 데리고 오는 바닷바람은 한 삼프로 내 아바이 생각케 하더이다
이 새벽부터 입에 침이 고이고 갑자기 허기가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