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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김수현)

이온디
2011년 04월 21일

스물 넷의 봄, 교회 앞뜰에 벚꽃 곱게 날리던 날, 결혼을 했다. 왜 그렇게 일찍 결혼을 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 사랑에 눈이 멀어서라고 대답하고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버지는 언제나 '권위와 억지'라는, 달갑지 않은 단어를 달고 다니셨다. 한평생 숨죽이며 살아온 엄마도, 성인이 된 자식들도 불만을 늘어놓았고, 온 집안은 불만으로 질퍽거렸다.

 

세월이 가면서 우리가 변했던 것이다. 다 함께 허리띠를 졸라매던 시절에는 숨을 죽이고 살아도 갑갑한 줄은 몰랐었는데, 아버지가 다져놓은 판판한 땅에 창이 큰집을 짓고 들어앉은 후, 우리는 창 밖을 내다보며 푸념을 일삼았다.

 

왜 허리 띠 졸라매고 허파에 바람이 들지 않아야만 '인간'인 것이냐고, 왜 일방적인 호통과 명령뿐이냐고. 텔레비전 연속극을 열심히 보지 않았더라면 애정 어린 설득을 하고, 자상한 대화를 나누는 가정을 상상도 못할 뻔했다.

 

아버지는 한평생 슬픔을 억누르고 외롭게 살아오셨다. 즐기는 삶이 아니고 견디어 내는 삶인 줄 뻔히 알면서 무슨 변화를 요구할 수 있었을까. 그 당시 한남자가 내 마음속에 날아들어와 그와의 한없는 자유로움을 꿈꾸게 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를 따라 창밖으로 훨훨 날아다니기도 했다. 외로움과 울분을 소주의 세상 말고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그런 예쁜 세상 속으로.

 

참으로 이상한 것은 아버지를 떠나고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언제부터인지 아버지를 만났던 것이다. 세상과 부딪힐 때마다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가 차지한 자리가 점점 커져갔다. 아버지와 얽힌 기억 투성이었다. 아버지의 소망과 아버지의 슬픔이 하나하나 나의 기쁨, 나의 슬픔으로 남아있었다.

 

이제 나이 드신 아버지는 많이 변하셨냐고 누군가가 물을 것이다.

 

세월이 많이도 흘렀으니까.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아버지는 변하지 않으셨다. 세월도 아버지에게는 꼼짝 못한다. 아버지가 그리워하는 사람도, 가고 싶은 땅도 오십 년 전, 그대로이다. 여전히 버럭 소리치고, 쯧쯧쯧 혀를 차신다.

 

정말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버지의 호통소리가 나에게 힘이 되고 따뜻한 위로가 된다. 세월은 또다시 나를 변하게 한 것이다.

 

나는 예전에도 아버지를 사랑했을 것이다. 아버지를 더욱 외롭게 했던 그 보잘것 없는 애정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세월은 그 사랑을 '아버지 식으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사랑으로 키워 주었다.

 

세상 모든 부모가 자식을 가슴에 품고 있듯이 자식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요즈음 한다. 어쩌면 오래 전, 아버지를 벗어나고 싶던 그 시절에 아버지는 이미 내 가슴에 들어와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때로 내가 무엇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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